전객령공계 대종회/대 종 회

동방아림(東方我林)의 득성설(得姓說)

임홍규 2010. 9. 11. 04:00

                                        



                                                 동방아림(東方我林)의 득성설(得姓說)

 

비간지자(比干之子) 견(堅) 은어(隱於) 장림산(長林山) 임자(林字) 위성시(爲姓云)

비간(比干)은 지금(只今)으로부터 삼천 백年 랑(郞). 서기(西紀) 기원전(紀元前)

일천백年 오늘날의 중국(中國) 황하유역(黃河流域) 남(南)쪽에 위치(位置)하였던

황하문명(黃河文明)의 중심지(中心地)인 은(殷)나라 삼십대(三十代) 주왕(紂王)의

삼촌(三寸)이며, 당시(當時)에 은(殷)나라의 속방(屬邦)이었던 주(周)나라의 조종(操縱)을

받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인 달비(妲妃)의 사주로 말미암아 주왕(紂王)이 자불인견

(自不忍見)의 학정(虐政)을 거듭함으로 주왕(紂王)의 삼촌(三寸)이신 비간(比干)께서 죽음을 무릅쓰고 이를

간(諫)하니 주왕(紂王)께서

『충신(忠臣)은 죽음도 불사(不辭)한다면 이 칼로 죽어보라』하며 차고 있던 은(銀)장도를 던져줌으로 비간(比干)께서는 그 칼을 뽑아 왕(王)앞에서 자결(自決)하니 만고충신(萬古忠臣)이라.

 

(비간 설화(比干 說話) 춘추(春秋)에서) 一九八二年 초추(初秋)

 

동방(東方)의 아임(我林)은 환웅천왕(桓雄天王)의 후예(後裔)인 비간(比干)은 서기(西紀) 기원전(紀元前)

일천, 일백年前 六四○여년(餘年)에 걸친 황하문명(黃河文明)의 발상지(發祥地)인 은(銀)나라의 개국시조(開國始祖)이신 탕왕(蕩王)의 二十九 代孫이며, 탕왕지명(蕩王之名)은 계(契)이요.

순재(舜宰)인 후(後)과 더불어 환웅천왕(桓雄天王)의 후예(後裔)라 후(後)이 계(契)을 대동(帶同)하고 환웅천왕(桓雄天王)께서 공신(功臣)으로써 봉왕(封王)하신 요당(堯唐)에 들어가시니 요왕(堯王)께서 아황(娥媓)과 여영(女媖) 두 자매(姉妹)를 후(後)에게 바치고 왕위(王位)까지 양위(讓位)하므로 후(後)이대를 이어 순(舜)임금이

되고, 대동(帶同)하였던 계(契)을 문사(文事)로 문교장관(文敎長官) 기용(起用) 하였다가 후(後)에 태백(太伯)을 창건(創建)하여 상(商)이라 이름하고 문사(文事) 계(契)을 탕왕(蕩王)에 봉(封)하니 은(殷)의 개국시조(開國始祖)이다.

상(商)은 은(殷)의 수도(首都)이며, 국토(國土)를 넓혀 국호(國號)를 은(殷)이라 하였다. 상왕(商王)은 랑(郞).

은왕(殷王)이니 이로부터 주왕(紂王)에 이르기까지 三十代 六四여년(餘年)에 걸친 화려(華麗)한 황하문명

(黃河文明)의 꽃을 피우다가 속방(屬邦)인 주(周)나라에 의(依)하여 멸망(滅亡)한 것이다.

고(故)로 동방(東方)의 아임(我林)은 비간지후예(比干之後裔)요 비간(比干)은 탕왕지후예(蕩王之後裔)이며, 탕왕(蕩王)은 환웅지후예(桓雄之後裔)임이 명명백백(明明白白)하므로 동방(東方)의 아임(我林)은 환웅천왕(桓雄天王)의 후예(後裔)인 것이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있으랴.

『갑골문(甲骨文) 산해경동국역대(山海經東國歷代)에서』

 

          一九八二年 초추 후손(後孫) 종운(鍾運) 근서(謹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