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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사 (윤봉길의사 유적지)

임홍규 2012. 11. 29. 04:32

 

 

충의사

 

절의 고향 수암산. 덕숭산. 가야산 기슭에 에워싸여 자리하고 있는 매헌 윤봉길의사의

고향 충의사를 찾아주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곳 충의사는 1968년 사당이 처음 창건되고 고 박정희대통령을 모시고준공식 겸 의거

기념행사를 거행한바 있으며 1972년에 사적 제229호 및 보물 568호로 지정받아 수차의

정화사업을 거쳐 현 사적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헌 윤봉길의사는 1908년6월21일 이곳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부친 윤황공과

모친 김원상 여사사이에 5남2여중 장남으로 태어나셨습니다. 11세때는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하셨다가 그 이듬해인 12세 때 일제의 식민지 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스스로 자퇴

하셨습니다. 19세 되시던 해에는 농촌부흥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이러한 농촌부흥운동을

애국운동이라 하여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져 국내에서 활동이 어렵게 되자 윤의사께서는

1930년 23세 되시던 해에 중국으로 망명하셨습니다. 윤의사의 나이25세때인 1932년4월

29일 중국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개최한 일제의 청장절 겸 전승기념일 축하식장을 폭파

시키는 거사에 성공하시고 윤의사는 즉시 체포되어 그해5월25일 상해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 동년11월18일 일본 대판 위술형무소에 이감되셨다가 한달뒤인 12월19일

금택형무소 교외 삼소우 공병작업장에서 총살형으로 25세 일기로 순국하셨습니다.

 

후 13년이 지난 1945년 해방되고 광복회 회장이셨던 이강훈 선생이 1946년 일본으로

건너가 윤의사의 유해를 모셔다가 서울효창공원에 국민장으로 안장하셨습니다.

이곳 충의사는 윤의사의 영정을 모신 본적지역. 윤의사께서 태어나시어 4세때까지 사셨던

생가(광현당)지역. 그리고 4세때 이사하시어 중국으로 망명하시기전인 23세때까지 사셨던

성장가(저한당)지역으로 나누워져 있으며. 윤봉길의사 기념관에는 유물51점이 전시되어있고

25세의 짧은 생애를 매직비전 등 복합영상모형으로 연출되어 충의정신의 학습장이 되고

있습니다.

 

러한 역사의 현장을 잘 가꾸고 다듬어 널리 알리는 일은 참으로 뜻 깊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시대적 요청에도 부응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작은 안내서가 매헌 윤봉길의사의 충의정신을 드높이고 널리 알리는 일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곳을 찾아주신 여러분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예산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