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객령공계 대종회/중앙회

1.우리 中央會가 할 일

임홍규 2020. 1. 9. 08:09




1.우리 中央會가 할 일

창간호게재 (19994 )

나는 林氏 姓을 가진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그는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의 원천(源泉). 수풀()人間生命의 원근이고 환경의 꽃으로서 인간생활(人間生活)에 갖가지 혜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생동안 수풀()에 대하여 연구하고 가르치고 하는 가운데. 누구보다도 수풀에 뿌리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는데 우리의 뿌리에 대하여 상계(上界)가 불 .분명(不分明)하여 관련 출판물이 저자에 따라 각각 다르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 원인(原因)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큰 원인은 고려조에 현달(顯達)한 조상이 많이. 계셔 이조건국(李朝建國)으로 무진사화(戊辰士禍)나 두문동 72(杜門洞72)의 경우와 같이 삼족을 멸하므로 살기 위하여 뿔뿔이 흐터저 은거생활을 하여야 했었기에 관향끼리. 교류도 부족하고 교통 통신도 열악하여 분파(分派)나 계대(繼代) 등도 통일을 못하고 지역 .중심으로 족보(族譜)등을 발행하였기에 오류(誤謬)가 많다고 본다..

 

논자는 미력하나마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에 이것을 바로잡아 다음世代에 올바르게 전 해 .주기 위하여 가까운 氏族 끼리 공동 관심사를 상의하기 위해 팽성임씨 통합추진 위원회. (彭城.林氏 統合推進 委員會)를 구성 활동하다 보니 전국규모의 종친회가 반드시 있어야 .

겠다고 생각하든 차에 다행이 지난 11월 전국에 사는 모든 林氏가 참여하는 全國林氏中央會.를 창립하였으니 이를 잘 가꾸어 아름다운 꽃과 열매가 매질 수 있도록 서로서로 힘을 합.해 조상님들의 위업과 숭조정신(崇祖精神)을 계승발전 하기 위하여 다음 일들을 하여야. 한다고 제언(提言)한다.

 

제언(提言)

1. 각 관향간에 유기적인 유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통신수단(임원 주소록)을 잘 정비한다.

2. 각 관향 관조 파조 제향(貫祖, 派祖, 祭享)에 상호 참례(參禮)하여 숭조 (崇祖)와 화목의 계기를 만들 무로서 대화의 장을 넓힌다.

3. 각 관향의 동정과 숭조사업 중앙회의 활동사항을 홍보하기 위하여 회보나 회보책자를 발행한다.

4. 집행부에 조직분과위 족보 연구 분과 위 홍보분과위 회의분과위 등의 주요 분과위를 두어 해당업무가 활성화되도록 한다.

5. 분과위를 통해 오류 된 사례를 보안하고 현재의 중앙회 명칭도 대종회 또는 종친회로 개정하는데 노력한다.

6. 여러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기금이 필요한데 개인의 특지 보다는 여러 회원이 참여 하는 기금 마련 안을 작성 추진한다.

7. 지난 임대홍 회장께서 세림 장학회를 통해 훌륭한 장학사업을 하셨드시 인재 육성을 위해 계속 장학 사업을 추진한다.

8. 전국 각 관향이 참여하여 발행한 後 甲子譜 (1924년 발행 羅州貫 예외)발간 정신에 따라 전 관향이 참여하는 상계계보나 합보를 발행하는데 노력한다.

9. 평택에 소재한 농성이 八及公世居地로 학술적 고증을 거처 우리 문화 유산을 찾았으니 이곳에 八及殿(가칭)을 마련하여 우리 성씨의 성역자로 만드는데 노력한다.

10.국제화시대에 발 맟 추어 세계임씨 종친회에 참여 각국 임씨종친회와 교류를 도모한다.

 

2. 族譜硏究分科 委員會가 할 일 2 호게재 (20004)

 

필자는 창간호에 우리 중앙회가 할 일에 대하여 몇 가지 목표를 제언(提言) 한바 있다.

그 대부분은 현재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고 앞으로 할 일도 많다 그 중 하나인 족보 연구분과위원회가 할 일은 중앙회가 할 일에서도 중추적인 일로 앞으로 각 위원들과 토론과 연구를 거처 다음 일들을 하여야 한다고 본다. 한국 임씨의 도시조(都始祖) 八及公에서 각 관향(貫鄕) 一世祖까지의 系代를 정립하는 것이다,

지금으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어서 쉬운 일부터 시작하여 차례차례 진행하고자한다. 차례는 각 계보(系譜)의 오류를 먼저 바로잡아 각 관향(貫鄕)의 계보를 정립하고 상계(上系)의 계대를 정립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지면관계상 이번 호에는 임씨 계보에 있어서 오류를 바로잡아야 할 한 사례를 들어 제언하오니 여러 종친에 질정을 바란다.

사례 : 계보(系譜) 오류(誤謬) 訂正에 대한 提言.

 

1. 갈곡공(葛谷公)典客令公(世春)玄孫이다.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족보관련 문헌인 성씨의 고향 한국족보대전, 한국인의 족보 등에 갈곡공(守謙)이 세자전객령의 현손(玄孫)으로 계대된 것도 있고, 충정공(忠貞公 彦脩) 후손으로도 계대된 문헌도 있으며, 1802년 임술보(壬戌譜)에는 전객령 후손이고, 1924년 전국 林氏의 대동보(後甲子譜,)에는 충정공 후손으로 되었으며 自派에서 최근 발행한 평택 林氏 갈곡공파 세보(世譜)에는 충정공 손으로 되어 있어 올 바른 계대 정립이 필요하다.

1) 典客令公손인 史的 논거(論據)

갈곡공은 유명한 文臣으로 1447(世宗29)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급제, 승문원(承文院)을 지내고 1457(世祖2)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3등이 되고 1466(世祖12) 사예(司藝) 사성(司成)을 거쳐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다. 이어 호조와 예조에 참의 대사성(大司成) 대사관 부제학(副堤學)등을 역임, 세조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 편전에서 왕에게 치도(治道)를 강론한 훌륭한 조상이시다.

갈곡공의 고조부 되신 世春公1330년대 인물로 아내 청주 경씨(淸州 慶氏)는 수()의 딸이며 그의 조상은 정중부(鄭仲夫)의 난을 討平한 청년 무장으로 유명한 경대승(慶大升)이요, 그의 후손인 경수는 고려조에 판서(判書)였던 인물이다.

그의 아들 사만(斯萬, 世春公의 처남)1322代言의 관직에 있었고 그의 아들 경복흥(慶復興)1372左侍中, 1374년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있다가 1380년에 사망한 인물임을 고려사에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보면 경복흥은 평원부원군(平原府院君:충정공의차남) 보다 10년전 시중이니 동년대의 인물로 볼 수 있고 세자 전객령의 아내인 청주 경씨의 아버지인 사만(斯萬)忠貞公과 동년배임을 알수 있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근거로 추정할 때 1385년에 서거하신 忠貞公의 출생 년대는 1296년으로 경사만의 1322년 고려조 代言職은 맏고 세춘공과 처남 매부간으로 볼 때 忠貞公 典客令公이 동시대 인물로 추정함은 타당하다.

(1) 갈곡공의 系代를 세춘공과 충정공으로 연대를 비교 해 보면

世子 典客令公으로 系代 할 경우

世 春       褓       允 生      茂       守 謙(갈곡공)

13301360년  1390년  1420년   1450

고조부   증조부   조부      부

忠貞公으로 系代할 경우

彦 脩 齊 味 孟 陽 世 椿 褓 允 生 茂 守 謙(갈곡공)

7대조 6대조 5대조 고조부 증조부 조 부 부

12941315추정 1332추정 13301360139014201450

138413881388

이상의 연대를 비교하면 忠貞公에 갈곡공을 계대 한다면 충정공이 7대조이므로 1세대를 30년으로 보면(30X7세대) 210년 정도 소요하는데 충정공(1294년생-1384년졸) 출생 전 系代가 성립되므로 연대에 모순이 된다.

, 한가지는 林氏 족보에 충정공(彦脩)으로 계대 할 경우 갈곡공의 고조부이신 세춘공(世椿公)은 전객령공(世春)과 동일인으로 보아야 한다. 글자 상으로 春字椿字만 다르고 아내는 모두 양쪽 淸州 慶氏 동일인이며 淸州 慶氏 족보에도 世春公이 경수의 사위이고 고려사절요에 경사만의 남매란 내용이 확실하게 나타나 있어 경수나 경수만의 부자(父子)1330년대로 고려사에도 나타나 있다.

이런 관계를 볼 때 충정공(언수)으로 계대 할 경우 忠貞公의 증손자가 世椿公이므로 약 100년의 계대 차가 생겨 모순이다 忠貞公 계대는 위의 논거(論據)에 의해 맞지 않는다.

따라서 갈곡공은 전객령공의 玄孫이 맞다. 다른 오류도 이렇게 하나씩 바로 잡아 가기를 제언한다.

 

 

3. 韓國林氏上系 系譜에관한 硏究 3호게재(2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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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安義 林氏 上系 定立에 관한 小考 7(20054)

1. 序言

안의 임씨는 임씨중앙회에 아직 등록되지 않은 관향이며 전체인구가 총264가구 1096(1985년 경제 기획원 자료) 밖에 안 된 적은 관향이다.

기 발행된 족보 관련 문헌을 설펴보면 안의 임씨 시조가 두 분으로 한 분은 林 吉이고 그 先系는 고려 공민왕 때 평원 부원군 임견미(林堅味)의 손자로 조선조에 中郞將을 지냈다 하는 丙寅譜 세록에 씌어 있다 하고, 또 한 분은 扶安林氏에서 分貫된 계통으로 典書公 임난수(林蘭秀)6세손 林大樑을 시조로 世系되는 자료가 있어 시조를 定立할 필요가 있다.

. 두 분의 始祖 조사

1) 林 吉을 시조로 한 관련 문헌

丙寅譜를 찾기 위해 검색한바 국립 중앙도서관 (고서 61239)에 소장 되어 있음을 확인 복사 본을 입수 조사한바 비교적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안의 임씨 족보 병인보(1926년 간)에 서문에 시조 林吉 中郎將 신도비문 현감 退思 선생 묘지(墓誌) 春谷 선생 묘갈명(墓碣銘) 칠대 조 부군 家狀 등이 자세히 기록 되어 있다

2) 林大樑을 시조로 한 관련 문헌

부안 임씨 전서공파 임난수의 6세손 임대양을 검색 한바 임씨 대동 세보 元編 (1986)을 찾아 6세손이란 계대를 보았고, 최근에 발간한 부안 임씨 대동보 (2003년 간)와 부안 임씨 전서공파 선조 보감 (2000년 간)에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다. 또한 부안관 족보 편집을 주관하였던 林貞喆 임씨 중앙회 상임 부회장에게 자문을 구한바 부안관에 임 대량 관련 자료를 열람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3. 두 분 시조 종합 검토

1) 우리나라 족보 관련 자료를 보면 시조 파조(派祖) 貫祖는 모두 고을 원 님이나 벼슬을 하신 조상이 분관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임 길은 이조 성종 때 中郎將을 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임 대량은 사료나 족보에 벼슬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2) 임 길은 안의 임씨 족보 자료에 서문 신도비문 여러 묘지 등에 임견미 후손이란 기록과 계대가 기재되어 있고 임대량이 안의 임씨 관련 자료에는 임 난수의 6세손이란 것 밖에 없었다.

3) 임 길은 윗대 조상과 年代가 맞으며 후손들도 생졸 관직 묘지의 위치까지 자세히 기록 되어 있다. 안의 임씨 집성촌이 황해도에 많다는 흔적이 있고 신천군에 있는 천일산(557m) 서편 선영(先塋)에 국립묘지 같은 위치 번호를 붙여 잘 정리된 족보자료도 가지고 있다.

 

4. 結言

임씨 중앙회에서는 삼대 사업을 성공리에 마무리하는 단계인데 아직도 안의 임씨 시조 가 두 분으로 자료에 따라 다르니 부끄럽기까지 한다.

앞으로 새로운 자료를 더 찾아 계속적으로 연구할 소지가 있음을 미루어 두면서 현제까지 알려진 문헌을 중심으로 종합하면 林 吉을 시조로 한 안의 임씨 족보 자료는 근거 있는 자료라고 판단된다.

 

참고 문헌

1 安義 林氏 族譜 林錫薰 1925년 간 국립 중앙도서관

2. 韓國人族譜 안의 임씨 편 1980년간 일신각

3. 平澤 林氏 平原府院君파 대보 1994년 간 농경출판사

4. 林氏 大同世譜 元編 林志洙 1962년간

5. 扶安 林氏 大同譜 林光洙 2003년 간 회생사

6. 扶安 林氏 典書公派 선조 보감 2000년 간 회생사

7. 林氏 祖上의 숨결과 발자취 林柄俊 1996년간

8. 族譜 回想 40年史 1994년 회상사

9. 韓國 族譜 大典 1989년 간 청화 도서출판

10. 고려사 이조실록 C D

 

 

 

5. 林氏 電子族譜발행에 대한 提言

8호게재 (20064)

1. 서언(序言)

우리 임씨는 서기 870년경 도시조(都始祖)이신 충절(忠節)八及께서 지금의 평택시 팽성읍에 정착하신지 1100여 년 동안 내려온 긴 가문사(家門史)를 가진 10성씨(姓氏)입니다.

모든 성씨가 그러하듯 분관(分貫) 과정은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되는데 대개는 가문이 번창하고 훌륭한 인재가 나오면 봉군(封君)이 되어서 그 분을 중시조로 모시는 경우가 우리 임씨(林氏)도 같은 경우로서 24()으로 분관(分貫)은 되었지만 모두 한 뿌리의 자손으로 우리 중앙회에서는 정립을 하였다.

논자(論者)는 자난 날 한 뿌리의 자손임을 정립시키기 위하여 1996년 팽성임씨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발하게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전국 규모의 종친회로 규합하지 않으면 이러한 통일된 계보를 정립시키기가 어렵다고 판단이 되어 1998년 에 전국임씨중앙회를 조작하는데 힘써, 임방현 종친을 회장으로 추대하여 모든 임원들이 합심하여 다음 표 1과 같이 우선 상계(上系)를 통일하므로 서 임씨 상계 보감을 발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대의 변천이 하루가 다르게 정보화 사회로 변천해 가므로 젊은 세대들에게는 조상의 얼과 내력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라도 컴퓨터에 의한 전자 족보의 발행이 옛 조상을 숭배하고 친척 간에 서로 돈독히 하는 게기를 우리 어른들이 앞장을 서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제인 전자 족보의 발행을 제언(提言) 하는 바입니다.

2. “전자 족보발행 내용(개요)

1) 도시조(都始祖) 이전의 상계보(上系譜)와 유적(遺蹟)

사적(事蹟) 사진

2) 도시조로부터 7(夢周) 까지의 계보(系譜)

3) 7(夢周)에서부터 각 관조(貫祖)까지의 계보(系譜)

(1) 각 관()별 계보(系譜)와 유적 및 사적 사진

나주(羅州), 은진(恩津), 평택(平澤 -典客令公派忠貞公派) 장흥(長興), 조양(兆陽). 임천, 전주(全州), 보성(寶城), 안동(安東),

임하, 울진, 울릉군파 평택(平澤), 예천(醴泉) 순창(淳昌), 경주(慶州), 부안(扶安), 진천

(2) 미확인 관()의 유적 및 사적 사진

선산(善山) , 옥야(沃野), 안동(安東), 옥구(沃溝)

4) 중앙회 홈페이지(Homepage) 보완 및 활용

(1) 각 관향(貫鄕)별 홈페이지 구성(構成) 안내 및 연결(Link)

(2) 각 관향(貫鄕)별 카페(cafe) 구성 안내 및 연결(Link)

(3) 현재 운영중인 홈페이지와 카페 안내

. 전국 임씨 중앙회 홈 페이지 http://www.jeonkuklim.or.kr/

. 나주 임씨 홈 페이지 http://www.najulim.org/index.asp

. 나주 임씨 cafe cafe.daum.net/najulim

. 평택 임씨 享先齋 cafe http://cafe.daum.net/ptim

. 평택 임씨 典客令 cafe http://cafe.daum.net/pyongtaeklim

. 진천 임씨 농다리 cafe http://cafe.daum.net/nongdari25

. 조양 임씨 아산재 cafe http://cafe.daum.net/jolim 4/22 추가

5) 문답으로 알아 본 조상 이야기 (100문 예정)

[]

1. 우리나라 임씨(林氏)의 도시조(都始祖)는 어떤 분인가?

답 임팔급(林八及) 할아버지로 서기 870년경 당나라 말엽 文宗18세에 용도각 한림학사(龍圖閣 翰林學士)로 시작하여 병부상서(兵部尙書)로 계셨는데 간신배들의 모함으로 참소(讒訴)를 당하여 칠학사(七學士)와 함께 지금의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에 있는 농성(農城)에 동도(東渡) 정착하였으며, 신라 국에서는 이부상서 (吏部尙書)의 벼슬을 하셨고, 적병이 변방을 침공함에 공께서 분연히 토벌하셔서 충절공(忠節公)이라는 시호를 받으셨다. (시호(諡號)는 사후 왕이 공덕을 기리는 이름)

최근 전국 임씨 중앙회에서는 도시조 임팔급공(林八及公)이 대만건너 중국 복건성 항아촌(港牙村)에서 출항한 마을 이름이 팽성(彭城)이고 지금도 팔급공(八及公)이 살았던 유적이 남아 있으며 우리나라에 도착한 아산만에 팽성의 지명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고증하였다.

6) 전자 족보 연구 분과 위원회 구성 (가칭)

각 관향에서 1명 씩 추천 구성 한다

3. 출판 규모 및 예산

1) 임씨 상계 족보 책자 100 페이지 규모 500

2) 상기 족보를 CD로 만들어 CD 500

3) 예산은 중앙회에서는 확보된 것이 없으므로 회원에게 유료 분배를 기본으로 하고 (1부당 1만원을 예상)

분과위원회의 회의 경비를 예상하여 책정할 필요가 있음

4) 발행예정일 : 2006년 연말 경

 

4. 결언(結言)

1기 전국임씨중앙회에서는 3사업을 목표로 설정하여 임씨 상계계보 정립 도시조 팔급공의 동상 건립. 해외 임씨 교류 및 팔급공 도해처(渡海處) 기념비 준공 등 을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됩니다.

2기 중앙회에서는 다음 젊은 세대들에게 조상의 뿌리교과서가 될

상계를 전자 족보를 발행하여 조상의 얼을 빛나게 하고

숭조(崇祖) 애친(愛親)의 미풍을 후대에 이어 주기를 바랍니다.

6. 우리 林氏의 자랑 회보 8호 게재 (20064)

 

먼저 全國林氏 중앙회 회보 8집 발간을 축하합니다.

우리 林氏는 좋은 성씨입니다. 숲이란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을 생산하기 때문에 살아가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不可缺한 요소이고 최근에 지구 온난화 와 황사 문제 등 세계적인 문제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숲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으며 숲이란 다른 사람을 위하여 봉사한다는 뜻도 가지고 있어 우리성씨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쓰는 임씨 성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忠節公 () 팔급 (八及)께서 평택(平澤)에 정착하신지 1100여 년이나 내려온 10대 성씨의 하나이며 훌륭한 조상님이 많으시어 封君되면서 종파가 형성되어져 현제 24개로 分貫은 되어 있으나 모두 한 뿌리의 자손인 것입니다.

다른 성씨들도 마 마찬가지겠지만 과거에는 교통과 통신이 불편하여 자기들만의 관향별 위주의 족보를 발간하다 보니 상계의 계보가 각각 달라서 이것에 대한 정리가 시급한 과제입니다.

 

이런 점 등을 고려하여 1997년 전국임씨 중앙회를 조직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삼대사업을 정하여 성공적으로 완수하게 되므로서 우리 宗事에 길이 남을 수 있는 큰일을 성공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여 정보화 사회 문화중심사회로 변화해가며 미풍양속을 더욱 중요시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하는데 있어 우리세대는 다음세대들에게 조상의 뿌리를 바르게 알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그 하나의 방법으로 각관의 中始祖까지의 상계 전자족보를 제 2기 임씨 중앙회의 중요사업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 일 것입니다.

 

요즈음 새 세대들은 세계사니 외국의 위인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우리들의 家系나 조상들께서 이루어 놓은 업적이나 유적에 대해서는 소홀히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많은데 우리가 만들어 퍼내는 회보를 통해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삶의 소식을 생생하게 밝혀줌으로서 다음 후손들에게 귀중한 자료로 삼기를 바라고 이 속에 담긴 얼과 깊은 뜻을 거울삼아 앞으로 자기 발전을 위한 좋은 指針書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 회보발간에 수고하시는 임광순 편집위원장과 편집위원 임종국사무국장님의 노고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7. 中央會 活性化에 대한 提言 (9호 게재 20074)

 

우리 중앙회가 19981111일 창립한지 어언 10주년이 되었습니다.

초창기에 중앙회의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임방현 회장을 중심으로 상임부회장단(나주관 임균택님, 평택관 임병구님, 예천관 임길상님, 순창관 임동락님, 부안관 임정철님)과 임동근 사무국장 그리고 각 관향별, 지부 임원님이 합심하여 중앙회 삼대사업을 설정하여 추진한 결과 종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간단히 이를 요약하면

첫째 임씨 상계 를 정립 하여 임씨 상계 보감을 발행하였고 전국의 모든 임씨 가 충절공(팔급)을 도시조로 하여 24관이 모두 한 뿌리 자손으로 체계화 했다는 점.

둘째 해외 임씨와의 교류로서 충절공이 도래한 이전에 유적지가 많았던 중국 하남성과 복건성을 두루 답사를 하여 충절공이 처음으로 출항했던 팽성촌에 한 중 합동으로 도해처 기념비를 제막 했던 점.

셋째 충절공이 처음 우리나라에 정착하신 곳 평택 팽성에 높이 8.5m(사업비 2억원)의 동상을 건립하여 임씨들의 정신적 중심으로 삼께 한 점이다.

이와 같이 목표를 설정하여 구성원들의 총의를 모아 추진한다면 무엇이든지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오르고 또 오르면 높은 산도 마침내 오르게 된다라는 신념으로 모든 성원의 집단사고를 바탕으로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계속하여 목표 설정을 해가기를 제언합니다.

논자는 이런 관점에서 회지 창간호에 우리 중앙회 가 할 일 10가지 목표를 제언한바 있었고(합본 p148), 2호에 족보 연구분과 위원장을 맡아 위원회의 할 일 (합본 p170)7호에 중앙회 홈페이지(Homepage) 작성(합본 p267), 8호에 임씨 전자 족보 발행에 대한 제언(8p47) 등 우리 중앙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제언한 바도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현 시점에서 보면 비교적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으나 앞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사항과 중앙회 활성화를 위한 몇 가지 사항에 대한 개인적 소견을 제언하니 여러 회원님들의 좋은 충고와 질정을 바랍니다.

1. 시급히 보완해서 시행해야 할 사항은 전국 임씨 중앙회 홈페이지와 각종 개인 카페(또는 블로그 Blog)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현재 초보단계의 홈페이지는 2년 전에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는데 현제는 해킹을 당해서 열 수 없다하니 종전 족보 연구분과 위원회와 같은 홈 페이지 운영위원회(가칭)를 구성 운영하도록 합시다.

2. 임씨 전자 족보 발행에 대하여 이미 본안은 회지 8(p 47)에 제언한 내용으로서 다음 세대에게 조상의 뿌리 교과서가 될 상계 족보를 발행하여 조상의 얼을 빛내게 하고 숭조 애친의 미풍을 후대에 이어주기 위하여 이 사업을 추진 해야한다.(세부 시행사항은 8호지에 게재됨)

3. 중앙회 삼대 분과 위원회를 활성화하여 미진 된 중앙회의 기능을 배가 시켜야 한다

1) 족보연구 분과위원회에서는 상계정립이 미완된 선산관 옥야관 안동관 옥구관 등의 상계정립을 계속 추진해야한다.

2) 충절공 유적지 건립위원회를 보존위원회로 개칭하고 유적지 보수와 유지 홍보, 참배와 제향, 유적 관련자료 발굴들을 추진한다.

3) 해외 교류 분과위원회에서는 국제화시대에 맞춰 세계 임씨종친회에 참여하여 각국 임씨종친회와 교류를 도모 한다.

4) 집행부에서는 임기 동안 사업목표를 연간 월간 사업 계획서를 수립하여 정기총회에 제안해서 승인을 받도록 한다.

한 예를 들면 수익자 부담원칙으로 20074월에 임씨 관련 국내 유적지순방, 10월에 중국 하남성과 복건성 유적지 순방 등등 연간 계획을 예고한다.

5) 어떤 조직이나 간에 회원 관리를 잘 하여야 활성화가 촉진되므로 집행부에서는 각관향 소식을 항상 모으고, 임원 변동사항은 즉시 파악하며, 임원의 회비는 의무적으로 납부하도록 권장한다.

6) 집행부에서는 각 관의 관조 파조 제향일을 파악하여 안내 하므로 서타관이나 자관 내 관조 파조를 알고 제향일에 참여하도록 안내한다.

7) 종친회 사업은 집행부의 봉사정신과 믿음을 인정받았을 때 사업 협조가 배가 됨으로 중앙회에서 좋은 일 하는 것을 홍보했으면 한다.

8) 분과위나 총회를 통해 중앙회 명칭을 전국임씨종친회나 대종회로 개칭했으면 한다.그 이유는 창립 당시의 여건과 달리 충절공을 모든 임씨의 도시조로 모시고 운영하고 있고 전국에서 중앙회란 명칭은 우리 밖에 없어 개정할 필요가 있다.

 

숭조(崇祖) 애친(愛親)의 미풍을 후대에 이어 주기를 바랍니다.

 

 

 

6. 우리 林氏의 자랑 회보 8호 게재 (20064)

 

먼저 全國林氏 중앙회 회보 8집 발간을 축하합니다.

 

우리 林氏는 좋은 성씨입니다. 숲이란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을 생산하기 때문에 살아가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不可缺한 요소이고 최근에 지구 온난화 와 황사 문제 등 세계적인 문제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숲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으며 숲이란 다른 사람을 위하여 봉사한다는 뜻도 가지고 있어 우리성씨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쓰는 임씨 성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忠節公 () 팔급 (八及)께서 평택(平澤)에 정착하신지 1100여 년이나 내려온 10대 성씨의 하나이며 훌륭한 조상님이 많으시어 封君되면서 종파가 형성되어져 현제 24개로 分貫은 되어 있으나 모두 한 뿌리의 자손인 것입니다.

 

다른 성씨들도 마 마찬가지겠지만 과거에는 교통과 통신이 불편하여 자기들만의 관향별 위주의 족보를 발간하다 보니 상계의 계보가 각각 달라서 이것에 대한 정리가 시급한 과제입니다.

 

이런 점 등을 고려하여 1997년 전국임씨 중앙회를 조직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삼대사업을 정하여 성공적으로 완수하게 되므로서 우리 宗事에 길이 남을 수 있는 큰일을 성공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여 정보화 사회 문화중심사회로 변화해가며 미풍양속을 더욱 중요시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하는데 있어 우리세대는 다음세대들에게 조상의 뿌리를 바르게 알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그 하나의 방법으로 각관의 中始祖까지의 상계 전자족보를 제 2기 임씨 중앙회의 중요사업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 일 것입니다.

 

요즈음 새 세대들은 세계사니 외국의 위인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우리들의 家系나 조상들께서 이루어 놓은 업적이나 유적에 대해서는 소홀히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많은데 우리가 만들어 퍼내는 회보를 통해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삶의 소식을 생생하게 밝혀줌으로서 다음 후손들에게 귀중한 자료로 삼기를 바라고 이 속에 담긴 얼과 깊은 뜻을 거울삼아 앞으로 자기 발전을 위한 좋은 指針書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 회보발간에 수고하시는 임광순 편집위원장과 편집위원 임종국사무국장님의 노고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7. 中央會 活性化에 대한 提言 (9호 게재 20074)

 

우리 중앙회가 19981111일 창립한지 어언 10주년이 되었습니다.

 

초창기에 중앙회의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임방현 회장을 중심으로 상임부회장단(나주관 임균택님, 평택관 임병구님, 예천관 임길상님, 순창관 임동락님, 부안관 임정철님)과 임동근 사무국장 그리고 각 관향별, 지부 임원님이 합심하여 중앙회 삼대사업을 설정하여 추진한 결과 종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간단히 이를 요약하면 첫째 임씨 상계 를 정립 하여 임씨 상계 보감을 발행하였고 전국의 모든 임씨 가 충절공(팔급)을 도시조로 하여 24관이 모두 한 뿌리 자손으로 체계화 했다는 점.

 

둘째 해외 임씨와의 교류로서 충절공이 도래한 이전에 유적지가 많았던 중국 하남성과 복건성을 두루 답사를 하여 충절공이 처음으로 출항했던 팽성촌에 한 중 합동으로 도해처 기념비를 제막 했던 점.

 

셋째 충절공이 처음 우리나라에 정착하신 곳 평택 팽성에 높이 8.5m(사업비 2억원)의 동상을 건립하여 임씨들의 정신적 중심으로 삼께 한 점이다.

 

이와 같이 목표를 설정하여 구성원들의 총의를 모아 추진한다면 무엇이든지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오르고 또 오르면 높은 산도 마침내 오르게 된다라는 신념으로 모든 성원의 집단사고를 바탕으로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계속하여 목표 설정을 해가기를 제언합니다.

 

논자는 이런 관점에서 회지 창간호에 우리 중앙회 가 할 일 10가지 목표를 제언한바 있었고(합본 p148), 2호에 족보 연구분과 위원장을 맡아 위원회의 할 일 (합본 p170)7호에 중앙회 홈페이지(Homepage) 작성(합본 p267), 8호에 임씨 전자 족보 발행에 대한 제언(8p47) 등 우리 중앙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제언한 바도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현 시점에서 보면 비교적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으나 앞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사항과 중앙회 활성화를 위한 몇 가지 사항에 대한 개인적 소견을 제언하니 여러 회원님들의 좋은 충고와 질정을 바랍니다.

 

1. 시급히 보완해서 시행해야 할 사항은 전국 임씨 중앙회 홈페이지와 각종 개인 카페(또는 블로그 Blog)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현재 초보단계의 홈페이지는 2년 전에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는데 현제는 해킹을 당해서 열 수 없다하니 종전 족보 연구분과 위원회와 같은 홈 페이지 운영위원회(가칭)를 구성 운영하도록 합시다.

 

2. 임씨 전자 족보 발행에 대하여 이미 본안은 회지 8(p 47)에 제언한 내용으로서 다음 세대에게 조상의 뿌리 교과서가 될 상계 족보를 발행하여 조상의 얼을 빛내게 하고 숭조 애친의 미풍을 후대에 이어주기 위하여 이 사업을 추진 해야한다.(세부 시행사항은 8호지에 게재됨)

 

3. 중앙회 삼대 분과 위원회를 활성화하여 미진 된 중앙회의 기능을 배가 시켜야 한다

 

1) 족보연구 분과위원회에서는 상계정립이 미완된 선산관 옥야관 안동관 옥구관 등의 상계정립을 계속 추진해야한다.

 

2) 충절공 유적지 건립위원회를 보존위원회로 개칭하고 유적지 보수와 유지 홍보, 참배와 제향, 유적 관련자료 발굴들을 추진한다.

 

3) 해외 교류 분과위원회에서는 국제화시대에 맞춰 세계 임씨종친회에 참여하여 각국 임씨종친회와 교류를 도모 한다.

 

4) 집행부에서는 임기 동안 사업목표를 연간 월간 사업 계획서를 수립하여 정기총회에 제안해서 승인을 받도록 한다.

 

한 예를 들면 수익자 부담원칙으로 20074월에 임씨 관련 국내 유적지순방, 10월에 중국 하남성과 복건성 유적지 순방 등등 연간 계획을 예고한다.

 

5) 어떤 조직이나 간에 회원 관리를 잘 하여야 활성화가 촉진되므로 집행부에서는 각관향 소식을 항상 모으고, 임원 변동사항은 즉시 파악하며, 임원의 회비는 의무적으로 납부하도록 권장한다.

 

6) 집행부에서는 각 관의 관조 파조 제향일을 파악하여 안내 하므로 서타관이나 자관 내 관조 파조를 알고 제향일에 참여하도록 안내한다.

 

7) 종친회 사업은 집행부의 봉사정신과 믿음을 인정받았을 때 사업 협조가 배가 됨으로 중앙회에서 좋은 일 하는 것을 홍보했으면 한다.

 

8) 분과위나 총회를 통해 중앙회 명칭을 전국임씨종친회나 대종회로 개칭했으면 한다.그 이유는 창립 당시의 여건과 달리 충절공을 모든 임씨의 도시조로 모시고 운영하고 있고 전국에서 중앙회란 명칭은 우리 밖에 없어 개정할 필요가 있다.

 

 

 

8. 情報化 사회에 따른 중앙회 發展 方向 모색

10호게재 (20084)

 

우리 중앙회가 창립한자 어언 10주년이 되었습니다.

초창기 어렵던 시기에 여러 종친들의 참여로 초대 회장을 중심으로 사업을 설정한 방향으로 추진 한바 종사에 길이 남을 일을 하였다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다행히 이번 신임 회장은 동상 건립에서 보여주시듯 추진력이 좋으시고 큰일을 할 수 있는 여건(신문사 등)이어서 지난 10년간 기초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절호의 좋은 계기여서 기대된바 큽니다.

필자는 창립 당시 전국 규모의 조직이 없어 해결해야 할 일들은 많아 반드시 중앙회 창립의 필요성을 알고 전주 임병식 고문님을 모시고 대동회 해산 결의 등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일들이 여러 가지로 추억되기도 합니다.

항시 우리 중앙회가 어떻게 하면 활성화 될 것인가 주소 근렴하면서 우리 중앙회가 할 일, 족보연구 분과 위원회의 할 일, 중앙회 home page 작성, 전자 족보 발행에 대한 제언 등 주로 우리 중앙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여러 차례 제언한 바도 있습니다.

현재 우리 중앙회에 참여하신 임원들은 대개가 60~70대로 농경사회에서 태어나 생활하고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인터넷은 최근에 생긴 것이라 많은 분들이 이용을 못한 반면 젊은 층 청소년들은 100%가까이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중앙회의 발전 방향은 젊은 세대들이 참여하여 우리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조상의 혼을 이어주기 위하여 정보화를 이용한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실천 사항으로

1. 중앙회 home page를 규모 있게 재편집, 많은 청장년들이 이용할 수 있게 단장해야 합니다.

2. 중앙회 cafe를 개설하여 종친에 관한 내용을 주로 하되 종친들의 취미 활동도 같이 개설 젊은 층을 참여하도록 안내한다.

현재 잘된 각 관향 cafe는 나주관 cafe, 평택임씨 향선재 cafe, 진천관 농다리 cafe들이 모범적인 사례로 치하 드리며 조양관 아산재 cafe도 잘 운영하는 cafe입니다.

3. 전국 임씨 상계 전자 족보를 발행합시다.

다음 세대에 조상의 뿌리 교과서가 될 상계 족보를 발행하여 조상의 얼을 빛나게 하고 숭조 애친의 미풍을 후대에 이어주기 위하여 이사업을 추진해야한다고 봅니다.(세부사항은 8호지 p47에 게재되었음)

4. 중앙회에서 발행한 모든 우편물 인쇄물은 홈페이지 게시판에 게재했으면 합니다. 이는 첫째 신속히 배달되며(1분내) 발송 경비가 절약됩니다.

5. 위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리 종친들이 인터넷을 사용 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정보화 사회에서 컴퓨터는 필수 요건입니다. 경험에 의하면 하루 2시간씩 15일간만 기초교육을 연수하면 누구나 사용 가능합니다. 혼자 한 것이 아니지만 필자는 대학에서 정년한지 어언 10년 한 달도 쉬지 않고 60세 이상 고령자를 1,600여명 무료 교육을 하였으며 지금도 교육하고 있습니다.

 

우리 임씨를 위해 이런 사업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도 생각하면서...

전국 어느 자치단체에도 컴퓨터 무료교육장이 있으니 주저하지 마시고 시작 하십시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오르고 또 오르면 정상에 오르며 시작이 반이란 말씀을 자주 신규 교육생에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중앙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인사에 갈음합니다.

 

 

 

 

9.우리 姓氏의 자랑과 우리 世代에서 해야 할 일들

11호게재 ( 20084)

1. 우리 성씨의 자랑

우리 임씨 성은 국내 10대 성으로 도시조 팔급 공이 경기도 평택시 팽성에 정착하신지 어언 1100어년의 역사가 있으며 최근 임씨 원류도 밝혀져 올해로 비간공 탄신 3056년이 되었으니 긴 씨족사를 가지고 있습니다.뿌리 깊은 나무는 가뭄에나 비바람이 심해도 잘 자라서 꽃을 피고 결실이 잘 된다는 용비어천가의 구절과 같이 우리 성씨는 이러한 긴 역사 속에서 후손들이 번창하고 있으며 비록 나주 임씨·평택 임씨 등 24관으로 분관은 되어 있지만 충절공에서부터 한 뿌리 손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수풀 임이란 것은 숲은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생산하므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요소이고 최근 지구 온난화 현상과 중국 대륙에서 날아오는 황사 문제 등이 세계적인 현안으로 이를 해결하는 길은 숲이 무성해져야만 한다는 주장이 날로 성하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 예로 나무 높이 2m인 소나무 한 그루가 맑은 날 하루에 20만 리터의 탄산가스(CO2)를 정화하는 기능을 하여 기온 상승을 막아 주며 그 외에도 홍수 조절 모래 날림 방지 등 공공 이익이 효능이 많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숲이란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며 우리 성인 임씨 성 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두나무가 하나로 묶인 임자를 쓴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2. 우리 세대에서 해야 할 일들

어떤 모임에서나 모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모임이 할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임씨 중앙회는 1997년 창립하여 어려운 여건에서도 세 가지 큰 사업인 임씨 윗대의 계통을 세우는 일, 도시조 이신 팔급공의 동상 건립과 그 기념사업의 일, 해외와의 교류를 증진하는 일등을 성공적으로 마친 점은 우리 종사에 길이 남을 만한 자랑스러운 일이 되었으며, 3대 현 회장이 재임하는 동안 충절공 묘소 봉안, 전자족보와 홈 페이지(Home page) 확충 합해서 기필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격려와 박수를 보냅시다.

다만 충절공 묘소 봉안 문제를 의논하는 경우는 충절공께서 처음 정착한 평택 농성에 건립한 충절공 동상과 함께 자손만대에 길이 남을 우리 임씨의 성지로 보존해야 하므로 이장할 경우는 반드시 근거자료에 입각하여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설단묘로 봉안하도록 뜻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중앙회에 참여하시는 현 회원들께서는 대체로 60~70대 인 것을 감안해 보면 앞으로 장수를 하신다고 하더라도 2~30년 후에는 이 세상을 떠나시게 되실 건데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일들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그러하기는 합니다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정보화 사회로 급진전 하며 물질 위주의 사회로 변천하면서 전통적인 미풍약속이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노년층이 살고 있는 동안에 젊은 세대에게 조상의 뿌리를 더욱 밝혀 주고 그분들이 이룩한 훌륭한 업적들을 올바르게 전승해 주어야 할 책무가 우리들에게 있으므로 컴퓨터와 같은 편리한 지식 정보 매체를 통해서 상계 전자 족보중앙회 홈 페이지를 완성하여 우리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중앙회 창립 초기에 우리 중앙회가 해야 할 일(회지 창간호) 3대 사업 중의 하나인 족보 연구 분과위원회 책임을 맡아서 동 위원회가 할 일 들을 제창(회지 2)하여 전 위원이 힘을 합해 성사시켜 임씨 상계 보감이란 책자를 중앙회에서 발간하게 되었고 앞으로 현 회장의 임기 동안에 추진해야할 사업 중 홈 페이지전자족보도 같은 흐름에서 1995년에 중앙회 홈 페이지작성(회지5p 267) 제언, 1996년에 임씨 상계 전자 족보 발행에 대한 제언(회지 8p 47~49)등을 제창 우리 세대에서는 이 두 가지는 다음 세대에 전승해 주어야 할 일이라고 다시 한 번 위와 같이 제창하는 바입니다.

 

 

10.전국林氏中央會 창립의회고(回顧)와 활성화에 대하여 提言

14(2011)

. 서언(序言)

임씨 중앙회가 창립 된지(98.11.11) 어언 13년이 되었다. 어려웠던 그 시절을 회고해 보면서 앞으로 중앙회가 나아가야할 방향 들을 제언(提言) 하고자 한다.

. 중앙회 창립 당시의 회고 (필자가 보는)

1. 필자는 平澤貫 海南 입향조(入鄕祖)이신 牧使公14代 宗孫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아버님의 유훈(遺訓)을 받들어 祖上에 관심이 많았던바 대학 교수시절 겸 보직으로 중앙도서관장의 직분을 맡게 되면서부터 林氏에 관련된 여러 자료에 접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족보를 편찬하는 곳에 따라서 다른 貫祖自派의 후손으로 하거나, 그와 반대로 다른 貫祖自派의 명 대 아래로 계대(系代)를 하는 등 잘못된 기록을 볼 수가 있었다. 퇴임을 한 다음에는 우리 성씨만큼은 이런 일들이 없도록 바로 잡아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정년을 앞두고 1996110일에 光州의 향선재(享先齋) 대종회 (平林會館)에서, 그리고 331일에는 忠州(파워파크장)에서, 426일에는 全州(정원회관)에서, 720일에는 益山(함열 이화가든)에서 지역별로 각 관향 대표 종친들 340명씩 모인 자리에서 세미나 형식으로 모임을 가져 단합하여 전국 규모로 통합된 조직으로 彭城林氏 統合推進委員會 구성을 추진한 결과 본의 아니게 본인이 초대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여러 貫鄕의 종친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통합추진위원회 회보 창간호(320P)를 발행하기에 이르렀다.

2. 그 다음은 중앙회 발족에 크게 도움이 된 행사는 제6차 팽성임씨 통합추진위원회 행사로서 그 개요를 말씀들이면 1997220일 서울 강남 터미널 옆 잠원동 스포스센터에서 전국 각 관향(貫鄕)에서 모이신 종친(132명 참가)들이 오전오후 종일 진지하게 토론을 갖었다.

연사 (演士)와 논제(論題)는 다음과 같습니다.(발표순)

林允華 큰스님 : 比干 후예 장림산 임씨 원류 에 대하여

林均澤(대전대 대학원장) : 한국 임씨연원에 대하여

林炳九 : 임씨 상계(上系)에 대한 고찰

林行鎭(순천대 대학원장) : 한국 임씨는 모두 팔급공 후손이다.

林貞喆(중부일보사 논설위원): 農城 복원(유형문화재774)에 대하여

각 관향(貫鄕)이 참여하는 전국 규모의 종친회를 결성하게된 것이 중앙회 발족의 첫걸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3.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전국 규모의 임씨중앙회(가칭)를 발족시키기 위한 준비 모임이 1차로 1998529일 서울 종로구(한일관)에서 임대홍 임병식임방현임병운임형순임승래임행진임종국등 8명이 모여 임씨 통합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였고,

4. 1998612일 같은 장소에서 1차 때 모였던 8명과 임병구

임학규임동근임용구임균택(서울)임균택(대전)임정택등 종친(15)이 다시 모여 임씨 중앙회 구성에 합의하고 그 발족 준비위원으로 임병식임방현임병구임학규임행진임종국등 6명으로 소위원회를 만들고,

5. 199873(3), 1998729(4), 199899(5)등 같은 장소에서 6인 소위원회를 열어 회칙, 임원구성, 회 명칭 등을 협의하였고,

6. 1998109(6) 회의를 각 관향 대표 22명이 한일관에 참석하여 총회 준비 위원회를 갖었다.

7. 19981026(7) 임방현 의원 사무실에서 임병식임방현임병구임행진임정철임동근임병순 등 종친들이 모여 1111일 총회 준비를 위한 여러 사항을 협의 하므로서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든 것이 임씨 중앙회가 창립된 과정이다.

 

. 중앙회가 시급히 해야 할 일들 (提言)

1. 忠節公 묘단(墓壇) 설치 與否를 조속히 결정해야 한다.

중앙회의 발족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일들은 많이들 하였다고 보여 진다. 특히 24()의 상계정립을 위한 임씨上系譜鑑 발행이나 忠節公 동상 건립 등의 일들은 임씨 종사에 길이길이 남게 되겠지만 2008년 충절공 묘단 설치문제를 계기로 중앙회가 침체되게 된 현실에서 중앙회의 존립마저 염려가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째 가칭 묘지연구 분과위원회를 활성화 하여 위원들의 연구결과를 기초로 회장단회의에서 그 설치여부를 조속히 매듭지어 중앙회의 단합된 힘으로 중앙회의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 다고 본다.

 

2. 林氏 上系寶鑑 재 발간 추진

林氏 上系寶鑑20024월에 366쪽 한권에 2만원으로 하여 발간한 임씨 上系정립을 위한 표준교과서라고 본다. 이 책자를 보완수정하여 실비로 보급하여야 한다. 또 발행을 해야 할 요인은 정체불명의 책장사들이 중앙회의 이름을 도용하여 林氏宗史寶鑑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무려 상하권 한질에 18만원씩 받고 판매하고 있어 주의를 요하며 내용도 오류투성이고 저자명도 없는 불량한 책자가 유통되고 있으니 종원들이 현혹되지 않도록 홍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3. 林氏 上系 전자족보 발행 및 중앙회 카페(인터넷Cafe)

임씨중앙회 홈페이지(home page) 활성화 추진

이미 여러 차례 젊은 세대에 조상들의 얼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언으로 필자가 중앙회 회지 또는 회의를 할 때마다 강조한 바 있다. 참고로 중앙회 회지에 필자가 게재한 내용을 보면

창간호 .... 우리 中央會가 할 일

2.... 族譜 硏究分科 위원회 의 할 일

3.... 한국 임씨上系에 관한 고찰

4.... 전국 임씨중앙회 Home page 작성

5.... 安義 林氏 上系 定立

8... 林氏 電子族譜 발행에 대한 제언

9.... 중앙회 活性化에 대한 제언

9.... 林景蕃 장군과 鹿屯島 전투

10.... 情報化社會에 따른 중앙회의 發展方向 모색

11.... 우리 姓氏의 자랑과 우리 世代에서 해야 할 일들

單行本 .... 林氏 上系系譜에 관한 연구

 

四 結言

우리 세대는 역사의 증인으로서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처 지금은 정보화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다. 氏族社會 환경도 많이 변해 다문화가족의 증가와 국가적으로는 戶主制 폐지 등 사회변화도 많아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앞에서 제시한 어렵게 발족한 중앙회 창립과 조직은 서로의 힘을 합쳐 중앙회를 활성화(活性化)해야 할 일들을 성실히 수행하므로 서 後代 젊은 세대들에게 올곧은 林氏의 얼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제언(提言)을 하는 바입니다.

 

 

 

 

11. 忠節公 墓壇 설치에 관한 기초 조사

15호게재(20124)

1. 序言

우리 林氏韓國 10大姓 중 하나로 인구 100만 명이 넘은 큰 氏族이다. 都始祖가 우리나라에 오신지 약 1100 여년이 지나는 동안 훌륭한 선조님들이 많아서 24으로 분관은 되었으나 모두 한 할아버지의 손들이다.

지난 10 여 년 전에 전국임씨 중앙회를 결성하여 도시조 이하 24이 어떻게 분관이 되었는지 이를 알기 쉽게 상계보감을 발간하고 또 도시조와 관련이 깊은 農城(彭城 지금의 平澤)에 웅장한 도시조 동상도 건립하여 宗史에 길이 빛날 중요한 사업들을 하여 왔다.

이제부터는 중앙회에서 추진해야 할 사업 중에는 먼저 도시조의 묘단을 설치하는 문제인데 이는 지난 2008년부터 추진하다가 우리 관향 간에 약간의 견해차가 있어 오늘까지 미루어오다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충절공 묘단 연구 위원회 등을 구성 연구된 결과를 근간으로 모든 종원 들이 합심 좋은 결과를 얻어 단합된 힘으로 사업을 추진하자고 제안합니다.

 

2. 都始祖 墓壇() 설치의 필요성

우리 임씨의 24貫 貫祖, 派祖의 묘지는 보존되고 있지만 도시조 님의 墓所가 없는 것은 문제로 남아 있어 이번에 우리의 단합된 힘으로 의견을 모아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현세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어 물질 만능의 사회로 변화되면서 전통적인 전래의 미풍양속이 바뀌면서 씨족사회도 많이 쇠퇴해 가고 있고, 다문화 사회로 다양화 되면서 호주제 내지 씨족제도의 변화가 많아서 앞으로 점차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볼 때 우리 임씨 민큼은 씨족 중심의 사회라는 것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라도 충절공 휘팔급의 단일 손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도 묘소를 설단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도시조는 중국 복건성 팽성에서 우리나라에 오셔 정착한 곳이 농성(팽성 지금의 평택)이고 이곳에 충절공 동상이 근방에 있어 이번에 설치하고자 하는 묘단과 연결하여 우리 임씨의 씨족 문화권을 형성했으면 한다.

3. 忠節公 묘소 설치에 대한 현 상황

필자가 직접 참여를 하지 않아서 묘지 조성 과정은 잘 모르고 있다. 그러나 중앙회 회보 등을 보면 2008325일 회장단 회의를 끝내고 팽성읍 신대리 충절공 묘지 조성 현장을 답사 하였으며 같은 해 424일 정기총회에서 묘소 조성 사업 계획에 대하여 묘소를 묘단으로 변경하여 가결 하였다고 알고 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구득하기 어려웠든 좋은 장소(시유지)에 묘소 봉분(封墳)을 이미 마련한 상태이고 이렇게 까지 추진하는데 있어서는 행정관청에 섭외 활동을 하는데 있어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추진과정에 수고하신 분들게 우리 종친들은 감사와 응원을 보냈으면 합니다. 필자의 소견입니다만 지난 해 구성한 묘지 분과 위원회 라든지 상임부회장단 회의를 통해서 좀 더 종원 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것이 이 사업이 잘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 해 봅니다.

4. 묘단(墓壇)이나 묘() 설치 사례조사

1. 우리 문중 묘단 설치 사례

1) 兆陽 林氏 23세조 묘단

조양 임씨 시조(諱 世味)는 평택관 충정공(四子)에서 분관 전남 보성군 벌교 선산에 모신 조상님으로 바로 묘 아래에 23세 묘단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2) 平澤貫 忠貞公系 祭壇

전남 나주시 송월동 1023번지 享先齋 墓域 一世祖 忠貞公 彦脩. 二世祖 忠簡公 成味. 三世祖 上將軍公 尙陽. 三世祖 參判公 吉陽 祭壇이 있다

2. 他姓氏墓壇 사례

1) 安東金氏 侍中公 墓壇 2) 丹陽 張氏 都始祖 墓壇

3. 에 대한 자료

1)國樂聖地 玉寶高 선생 墓域 조성 2)동편제 創始者 歌王 宋興祿 묘역 조성

 

5.結言

묘단 설치문제는 我姓이나 他姓이나를 막론하고 위 사례와 같이 많이 조성하고 있으며 우리 중앙회에서도 묘단 설치는 98년도 합의는 하였다고는 하지만 너무 조급히 서둘다 보니 일부의 異見도 있어서 앞으로 추진하기에 따라서 굳은 땅에 물이 고이면 땅이 더 단단해진다라는 속담 말처럼 위원회와 회장단 회의에 합의를 얻어 총회에 까지 보고하여 시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 됩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팽성(평택)에 우리 성씨와 연관되는 農城 그리고 都始祖 銅像 등 향토 문화재로 채택이 되도록 추진하는데 있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으리라 생각 됩니다.

 

참고로 설치에 대한 자료로서 南原國樂 聖地를 직접 답사 조사한바 南原市樂聖 玉寶高 先生 후손들, 동편제 歌王 宋興祿 선생의 후손들이 합동으로 墓域을 완성하므로 서 흡사 국립묘지 묘역의 일부와 같이 잘 조성이 되여 있었다. 현장 답사 전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사진을 본바와 같이 이 분들 선생의 창작 산실로 전해진 옥계동 계곡에서 선생의 혼을 모셔다가 국악의 성지에 지석을 묻고 묘역을 조성하는 과정을 볼 때 우리들도 본받을 만한 생각이고 좋은 자료가 되었다.

무슨 일이 든 일을 하려고 하면 기회가 있는 것인데 여기에는 하려고 하는 목표가 있어야하고 자금이 있어야하고 인적 구성이 잘 가추워 있어야 만 이 요소의 3박자가 일치된다고 하는데, 다행히 우리 중앙회의 조직은 경기도와 인연이 있는 유능한 분들이 있어 人長之德이란 好期를 맞았다고 봅니다.

 

 

12.젊은 世代林氏 ()을 심어주자 (提言) 16(2013)

序言

우리 임씨는 좋은 성씨를 가졌다 수풀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을 생산하므로 환경면에 보물이다.

종친 수도 많아 우리나라에서는 10대 성씨이고 100만 여명이며 세계 임씨 자료에 의하면 중국 일본 태국 등에 7000여 만명이라니 거대성은 틀림없다. 역사 면에서도 도시조 팔급공이 팽성에 정착하신지도 1100여년의 역사와 거슬러 太始祖 比干公 탄신까지는 3061년 되었으니 긴 氏族史를 가지고 있다.

 

우리 임씨의 원류는 전국임씨 중앙회가 창립하기 전까지는 도시조 팔급공이 동도설 등 몇 가지 설로 전해오다 1995년에 중국 比干文化 연구회 명예회장이시고 당시 서울 대성사 불심도문 임윤화(林允華) 큰스님이 한해 중국에 4차례나 왕래하시면서 국내 뜻 있는 종친들과 함께 동행 우리나라 임씨 원류(源流)를 태시조(太始祖) 비간공(比干公)과 도시조(都始祖) 팔급공(八及公) 간의 계보를 정립해 주셔 감사한 마음 그지없다.

우리 세대는 역사의 증인으로 농경사회 산업사회 지금의 정보화 사회를 거치면서 부모님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동양철학과 숭조사상이 투철 하는데 이제 모두 7-80을 넘었으니 우리의 사상을 젊은 세대에 전수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더욱이 젊은 세대들은 서구 문명의 도입으로 개인주의 적 생각에 핵가족화 호주제 폐지 도농격차로 다문화가정 생성 등 전통적 미풍양속이 멀어저 가고는 있지만 앞으로의 미래 세계는 한문문화권(한국 중국 일본)이 세계를 움직인다고 세계의 碩學들이 제장 한것을 보면 기대도 해 본다.

 

전수 방안(傳授方案)

어떤 조직이나 회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모임이 지향 해 야 할 목표설정이 중요한 과제이다.

1) 임씨 상계보감 책자 내용을 USB에 등재보급

젊은 종친들이 애용하는 USB에 책자 내용을 등재 임씨의 뿌리 교육에 각 관향에서 노력하시기를 권장한다.(1만원 소요)

2) 임씨 중앙회 home page cafe 활성화

젊은 종친들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사항인데 중앙회에 사무 요원이 없어 home page는 어려움이 있으나 현제 운영하고 있는 중앙회 cafe에 라도 각 관향이 참여 젊은 분들이 임씨 관련 자료를 공부 할 수 있도록 권장한다.

현제 각 관향에서는 home page는 나주 관과 은진관(부산)이 모법적으로 운영하고 있고 cafe도 나주관. 평택관 향선재, 전객령계. 조양관. 예천관. 진천관 등이 잘 운영하고 있어 실무에 봉사하신 분에 고마움을 드린다.

3) 평택(彭城) 忠節公 유적지등 동상(銅像) 참배를 권장

우리의 도시조 충절공께서 서기 870년경 아산만을 통해 농성에 정학한 유서 깊은 곳에 20043월에 충절공 동상을 거대하게( 8.5m 높이) 세우고 2000여명의 전국 종친이 모여 제막한 성역지를 참배토록 권장 한다

겸하여 아산만 옆 충절공 墓壇()도 완성 성역화 단지로 후세에 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중부지방에는 충주에 숭모사등. 임경업장군 유적 충청 진천 농다리등 진천관 유적 충남, 숭모각(崇慕閣)유적 대전 뿌리공원 전북에 부안관 유적 익산에 평원 부원군 유적 장성에 장흥관 유적 나주에 나주관 여러 유적과 평택관 忠貞公 유적 화순에 순창관 유적 벌교에 조양관 유적 거창에 은진관 유적 예천에 옥천서원 등 예천관 유적 많은 유적지를 순회 참배토록 권장한다.

4) 중앙회 사무실과 장학사업도 추진

미래를 내다보는 하나의 희망이겠지만 목표는 설정해야 한다. 각 관향에는 종친회 사무실이 있지만 중앙회 사무실이 없어 회장이 옮길 때 마다 어려움이 따른다. 충절공 동상 건립시 수억의 헌성금을 모금하는 마음으로 합심한다면 불가능은 없을것이다. 겸하여 장학사업도 과거에 미원그릅(지금은 대상) 林大洪 회장님이 우리 임씨 자녀들을 위해 훌륭한 인재들을 양성하셨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원리에 연구 할 과제이다.

結言

전국임씨 중앙회가 창립한지 어언 15, 초창기 어려웠던 모든 일을 극복하고 역대 회장님을 중심으로 임원진과 함께 三大事業을 완성 보람 있는 일을 하였다고 본다. 이런 정신이 젊은 世代에 전해서 우리 임씨가

 

 

 

 

13. 독립 운동가 임병찬(林炳瓚) 할아버지 17호게재,2014

최익현과 교분 청백리서 義兵將으로

하룻만에 뱃길 따라 萬里를 왔네. 저문 구름 밝은 달에 슬픔을 못 이겨. 서녘을 바라보네. 고향삼천은 어디인고. 쓸쓸한 매미 소리는 옛 고향 같구나. 이 시는 19066월 전북 태인에서 면암(勉菴)을 받들고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체포된 임병찬이 대마도에 유배된 직후 그 심경을 나타낸 것이다. 임병찬은 제2차 의병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창의하였을 뿐만 아니라, 1910년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하에서도 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국내 의병의 마지막 횃불을 사른 불굴의 의병장이었다.

 

임병찬(1851-1916)은 전북 옥구군 서면 상평리 남산 에서 태어났다. 그의 本貫平澤, 호는 둔헌(遯軒), 자는 中玉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대단히 총명해서 세살 때 말과 글을 읽고 다섯 살에 唐書를 통하여 神童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그가 15세 때인 1866년에는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여 전주 향시(鄕試)에 나아가 합격하였다. 그러나 그는 집안이 가난하여 그 이듬해에 향리인 옥구로 들어가 일 하던 중 능력을 인정받아 후일 전주 감영의 營吏로 진출하였다.

그가 향리로 일하던 1888년 전라도에 큰 가뭄이 들자, 그는 수천 량의 사재를 내어 어려움에 처한 굶주린 백성 등을 구휼하였다. 전주감영의 戶長으로 재직 시에는 세금징수를 효율화하여 주민의 부담을 경감시켜 준적도 있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18897월에 樂安 郡守(현 순천나안) 겸 순천鎭管兵馬 同僉節制使를 제수 받았다.

낙안군수로 재적시에도 그가 善政을 베풀었음은 물론이다. 그는 흉년으로 백성들의 생계가 어렵다는 사실을 중시하여 민간에 대한 관리들의 작폐를 일소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예컨대, 萬人傘立碑를 근절시켰으며, 주민들의 세금탕감이나 감면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그는 주민들로부터 청백리로 소문이 났던 것이다. 이처럼 선정과 관련된 일화는 수없이 많다. 이는 그가 과거 20여 년 간 郡吏營吏職 역임을 노련한 행정관리였기 때문에 가능하였으리라 생각된다.

 

한편 그는 1890년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로 돌아왔다. 그 후 수년동안 농민들의 동요가 심상치 않자 자제들에게 검소하게 생활하는 것을 家規로 정하여 실천케 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불길이 타오르자, 그는 洞約契를 만들어 농민군의 피해를 막았다. 나아가 농민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패배한 이후 세력이 급속하게 악화되자, 그는 남원을 무대로 활동하던 농민군의 지도자 김개남을 유인, 체포한 주역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그는 임실군수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일제의 침탈이 날로 가속화되어 가는 것에 우려를 금하지 못하였다. 이후 그는 뜻있는 인사들과 빈번하게 접촉하며 義擧를 암중모색하는 분주한 나날을 보내었다. 그러나 일이 여의치 않자, 모천의 묘를 이장한 후 전북 태인군 산내면에서 시묘 살이에 들어갔다.

판편 이무렵 최익현은 전국에 창의를 호소하는 글을 보내어 동조자를 몰색 하였으나 거의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실의에 빠진 최익현에게 하루는 門人 고석진이 찾아와 임병찬을 추천하였다. 최익현은 시 최제학을 보내어 의병의 거사를 타진한 즉, 임병찬은 적극 찬동하였다.

이후 창의에 필요한 모든 준비는 임병찬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일을 추진한 관계로 생각만틈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임병찬은 최익현에게 가을로 거사를 시기를 늦추자고 건의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늦었다는 면암의 말에 의해 1906년 음력 윤413일에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창의의 가치를 올리게 되었다. 요컨대 무성서원의 거사준비는 바로 임병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무성서원에서 최익현은 강회를 마친 후 바로 창의를 선언하자 목숨을 걸고 따르는 사람이 80여명이었다. 이들은 인근 군읍을 돌며 무기와 군자금 그리고 의병을 모아 북상할 계획이었다.

 

최익현이 대마도에서 순국한 이후 임병찬을 비롯한 대마도 유배자들은 高宗의 사면을 받아 1907년 음력 정월에 석방되어 환국하였다. 그 가 돌아오자 다시 의병을 일으킬 것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가 동학 농민군을 진압한 능력과 호남지역에서 제2차 의병을 선도한 공로를 잊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의병의 투쟁역량을 길러서 결정적인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에 국체보상운동의 일환인 단연연맹에 가담하면서 정세를 관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군경은 그를 위험인물로 간주하여 위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회유하였다.

 

일제의 식민지로 전략한 19129월에 그는 公州儒生 이식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황제의 밀명에 의해 獨立義軍府의 결성을 추진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전라북도 독립의군부 순무총장에 임명되어 義擧 方略을 수집하고 전국에 걸쳐 조직을 확대하였다. 이 과정에서 金昌植1914년 음력 5월에 체포됨으로써 독립 의군부의 조직이 탄로되었다. 결국, 독립의군부에 가담했던 수십명과 함께 그는 음력 윤5월에 뒤를 따라 순국하였다.

그는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전북 정읍군 산외면에 河淸祠同義記念碑가 세워져 있으며 최근에 그의 문집의병투쟁 일기도 증보 간행되어 의병연구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14. 忠節公 墓域 빨리 完成합시다. (提言)

(18호게재, 2015)

 

1. 序言

우리 임씨는 한국 10大 姓氏100萬名이 넘는 큰 씨족이다. 도시조(都始祖)님이 평택에 정착하신지 1140 여년이 지나온 동안 현창(顯彰)한 선조님이 많아서 24으로 분관은 되었지만 모두 충절 공손이다.

우리 중앙회가 1997년에 창립 어언 18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볼 때 어려운 여건에서도 上系定立 임씨 상계보감 발행과 우리 임씨의 聖地 農城忠節公 동상(銅像) 建立 등 우리 宗史에 길이 남을 좋은 일을 하였으나 우리 임씨 24관 관조(貫祖) 시조 파조(派祖) 원조(遠祖) 묘지 등은 잘 보존하고 있지만 도시조 묘역은 아직 완성되지 않아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현제 묘역 상태는 20085대 회장 말기에 평택시 팽성읍 신대리 산 23-5 번지(시유지)에 첨부 사진과 같이 넓은 묘역에 분봉까지는 만들어 놓았으나 일부 회원 간에 異見으로 추진이 주춤하다 6대 회장께서 충절공 묘지 분과 위원회를 구성 타의이기는 하지만 회 발전을 위해 필자가 분과 위원장을 위촉 받아 컴퓨터 검색을 통해 우리 모든 임씨의 설단묘(設壇墓)와 타성 까지도 조사하였으며 국악의 성지 南原을 직접 답사 악성(樂聖)옥보고(玉寶高) 선생의 묘역과 가왕(歌王) 송흥록(宋興祿)선생의 묘역 조성 과정을 조사 20124월 우리중앙회 회보(15)와 우리 중앙회 cafe 일반게시판 (83)에 조사 보고서를 제출 한바 있으며 2013년에는 필자가 사는 순천 근방 고흥에서 김영삼 대통령 김영김씨(金寧金氏) 관조 묘 봉안 행사 정보를 알고 우리 충절공 묘역과 공통점이 있다고 보아 제백사 행사 현장을 답사 관련 있는 자료를 게재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설치에 참고 되는 사례

1) 金寧金氏 貫祖 墓 奉安

본 사례는 필자가 직접 현장 행사에 답사 조사한 것으로 2013 46. 장소는 전남 고흥군 과역면 석봉리 가산에서 당일 흐린 날씨에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전국에서 모인 후손들이 관광 bus 20여약 1000여명이 모여 告由祭를 지내는 것을 보았다.

(자료사진은 우리 중앙회 cafe 일반게시판 에 게재하였음)

참고자료는 고유제 유인물에 김종빈(金鍾彬)회장 인사 말씀에 이런 구절이 있다.....中略 지금까지 우리 김영인 들은 관조의 묘가 개성 송악산에 있었다고 하나 분단된 현실에서 확인 할 길이 없어 안타깝게 만 생각 하였을 뿐 관조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 전 종인이 뜻을 모아 1456년 병자사화 시 사육신 중에 영도자이셨던 충의공의 종가 이곳 고흥 가산에 관조 묘소를 봉안하게 되었음을 뒤 늦은 일이지만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중략

경과보고 난에 ....중략

봉안 고유제에 앞서 (평토제 지내다)지난 324일 백의체를 밤나무로 조각 (체의 모양을 사람의 육신 모습으로 /밤나무 :陰木=주로 신위나 位牌 만듬):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 부근에서 밤나무를 구하여 栗木 封山之所: (체혼을 石棺에 넣어) 장례와 동일하게 祭禮를 올리다. ....중략

 

2) 樂聖 玉寶高 선생과 동편제 창시자 歌王 宋興祿 선생의 국악의

성지 남원 운봉에 국립묘지 같이 묘 조성

본 자료는 중앙회 회보에 기 발표한 것으로 요점은 지리산 밑 운봉 폭포에서 득음하였다하여 남원 시장과 후손들이 폭포수 옆에 공기를 담아 묘 표석과 함께 묻어 묘역을 조성했다는 내용임 (사진 참조)

 

3. 結言

우리 세대에 묘역을 안성 합시다. 지금 사회는 핵가족, 호주제 폐지, 다문화 가정 증가로 전통 문화는 살아져 가고 있는 실정이나 세계의 석학들은 머지않아 한문 문화권으로 진입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동양 철학 사상이 세계를 움직인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후손들에게 평택 팽성에 충절공 동상과 세거지 농성, 아산만에 팔학사 처음 입항한 근처에 묘역도 마련 임씨 성역지로 만들어 경기도나 평택시 지방 문화재로 등제 되도록 다 같이 노력 합시다.

필자는 묘단 설치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김영삼 대통령의 貫祖를 전남 고흥에 묘 설치, 남원에 국악의 성지로 악성(樂聖) 옥보고(玉寶高) 선생 동편제 歌王 송흥록(宋興祿) 선생 묘 생성 과정을 음미 할 때 都始祖님 묘역 조성에 좋은 자료라 사료됩니다. 무슨 일이든 일을 하려고 하면 기회가 있는 것인데 여기에는 하려고 하는 1)단체목표가 정립 되어야 하고 2) 자금이 있어야 하고 3) 인적 구성이 잘 가추워야 하는데 묘역은 평택 시유지에 지방 자치 기관의 협조 없이는 어려워 경기도와 인연이 있는 유능한 宗親님이 계실 때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15.전 순천대 교수 임행진 박사 효자상 수상

순천향교 기로연 식장에서

노령화시대 효경사상 지역사회 모범 보여

 

 

84세의 임행진(순천대학교 임학과 전 교수) 박사가 지난 718일 순천향교 기로연에서 효자상을 받아 고령화시대에 귀감이 되고 있다. 임 박사는 88년 부친이 돌아가신 후부터 거동이 불편하고 지병이 있는 모친을 30년 가까이직접 모시고 보살피는 효행을 실천해오다 지난 328일 임 교수의 품에서 106세로 천수를 다하였다(당시 순천 최고령자).

모친이 워낙 고령인 관계로 최근 10여간은 자력 이동, 식사, 세안(洗眼), 목욕, 대소변조절, 착탈의, 청력 등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고 의사소통이 여의치 않았다.

주중 낮에는 간병요양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나 그 외 오전 및 야간과 주말에는 임 박사 몫 이였다. 야간에는 대소변을 失禁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특히 배변의 경우는 이를 직접 세척하고 옷을 입히고, 세안과 양치질도 손수 해주고, 매일 조석으로 손수 취사(

)한 후 평소 좋아하는 음식으로 정성껏 모셨다.

부인 김영례 여사께서도 978월에 뇌출혈로 쓰러졌으나 생사의 갈림길에서 남편의 헌신적인 간호로 회생 할 수 있었으며 현재는 파킨스병의 후유증으로 뇌병변 2급 장애인으로 생활을 하고 있어 고령의 노모를 모시기도 벅찬 환경이지만 불편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부인의 간병까지 하고 있다.

인근에 있는 자녀들이 있어 도와주고는 있지만 주거지에는 부인과 모친과 노인만 3명만이(3명의 총 나이:272) 함께 거주하고 있어 부인 역시 자력 행동이 불가하여 어머니의 간병은 오로지 임 박사가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이었다.

임 박사 가정의 家訓崇祖, 和睦, 弘益人間이다. 삶의 가치관인 家訓을 실천하며 자녀들에게도 모범적인 아버지 모습을 보여 주면서 효를 중시하고 어른을 공경토록 가정 교육해 노령시대 타 가정의 모범이 되고 있다.

임 박사는 형제들에게도 아쉬운 것들이 있다. 5남매의 장남인 임 박사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동생들이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것이 늘

마음 한구석에 짐으로 남아있다.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에서 소농의 23녀 중 장자로 태어난 임 박사는 당시 일제 강점기와 6.25의 시대적 상황이기도 했지만 가족이 교육을 받을 형편이 되지 않아 불가불 홀로 수학하게 되었고, 이 역시 바로 아래 동생이 부친과 함께 농사에 전념하여 무사히 대학을 마치게 되었다고 한다.

동생이 학업의 기회를 포기하고 시골에서 농업에 종사함을 항상 고맙게 생각하며 가슴 아파했던 임 박사는 동생의 자녀(조카) 6명 중 조카 5명의 유년기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후원함으로써 모두가 대학(박사 2)을 졸업 할 수 있게 하였다.

 

40여년의 교직활동 인재 양성

순천 저전동 자택에서는 조카 장자를 초등학교 6학년부터 7년을, 조카 장녀와 차녀는 대학 4년을, 광주시 용봉동에 매입한 주택에서는 조카 장자는 대학 4년을, 2남과 3남은 중고등학교 6년을 각 각 수학케 하였으며, 그 중 장자는 현재 순천대학교에서 자신의 뒤를 이어 교수(사회체육학과)로 재직하고 있음을 큰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처럼 임 박사의 실천의 효행을 보고 성장한 두 집안 형제간 자녀 11명은 부모들의 뜻을 이어 받아 학업에 매진하여 사회의 동량으로 성장했고, 사춘지간 이상의 친형제 우애를 돈독하다.

임 박사가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낼 수 있고 조카들을 친자녀처럼 훈육하여 훌륭하게 성장케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현모양처 김영례(金榮禮, 82)여사의 헌신적인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임 박사는 교육 경력 41년 중 35년을 순천대학교(전신 농고, 전문대학 포함)에서 봉직하면서 순천대학 학생처장, 중앙도서 관장, 교무처장, 농과대학장, 대학원장 역임하면서향토의 후진양성에 헌신공로로 국민포장, 교육 공로상(교육부 장관), 97년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을 했다.

특히 60년대~70년대의 농경 및 산업사회를 거치는 동안 임 교수는 林學을 기초한 조경수, 유실수, 산림 묘목 생산 교육에 주력하여 우수한 제자들에 의해 순천을 조경수 원예단지로 조성되여 지역인의 소득 증대 함께 순천을 살기 좋은 도시 육성에 산파역을 하였다. 상기인과 임학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순천만정원박람회도 가능할 수 있었다.

 

정보통신기술 컴퓨터 지도 등 노익장 과시

임 박사는 노모인 모친을 극진히 봉양하고

중증 장애의 배우자를 간병하는 중에도 지역사회 노인들을 위해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전남대학교 순천지구 동문회 초대회장 및 고문, 순천 정원박람회 홍보 위원, 全國 林氏 중앙회 상임 부회장, 한국복지통신협의회 순천 지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정년 직후인 1998년부터는 55세 이상 고령자의 무료 컴퓨터 교육을 위해 한국복지정보통신 협의회(KT후원) 순천지회를 창설하고 초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상임고문을 맡아 602,739명을 배출함으로써 소외층인 고령층의 정보화와 친목에 힘써오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41, 정년이후 고령자 정보교육 16. 무려 57년을 교육자 여정을 걷고 있으면서 뜻있는 인생을 영위하고 있어 주변으로부터 학자로서도 존중되고 있다.

 

임 박사는 平澤林氏 忠貞公系 牧使公派 14代 宗孫으로 부친의 유훈(遺訓)을 받들어 정년 후 팽성(彭城) 임씨 통합추진위를 발족 위원장을 맡아 林氏 上系의 오류를 바로 잡은 가운데 전국 규모의 조직이 필요하여 1998년부터 전국 임씨 중앙회를 발족 현제까지 16년간 상임부회장 겸 족보연구 분과위원장 .정보분과 위원장, 묘역분과 위원장을 맡아 국내의 모든 임씨 24을 한 뿌리 으로 定立 임씨 上系 보감(譜鑑) 책자를 발행하는데 기여 하였으며, 한국 보학(譜學)연구회에 평생회원으로 회원 논단을 통해 유림 사상 보급에 힘을 쓰고 있다.

순천대학교 중앙도서관장 재임시절에 순천지역 특히 순천향교 고서적 부본을 보존 관리하여 이후 순천향교의 소실된 고서적을 복원하는데 기여하는 등 유학 자료 보존에 노력하였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정신과 보편적가치에 대한 신념으로 일관성있게 솔선수범의 자세로 향토 사랑을 실천해오면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재능을 사회에 아낌없이 기부하여 소외계층과 어려운 이웃에 대한 봉사와 나눔의 실천, 사랑과 화해의 문화조성에 항상 앞장서 온 것이다.

한편, 순천향교(전교 박홍민)718일 명륜당 잔디광장에서 각급 기관단체장 및 유림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순천향교 시조교실(대표 장지모) 회원들의 시조 낭송과 순천 여성문화회관 사랑봉사단의 민요 및 무용 공연이 펼치는 등 갑오년 기로연을 성대하게 거행했다.

 

 

 

 

成均館에서도 孝子賞 授賞

孝子 林 行 鎭

순천향교에서 상신한바 있는 孝子表彰 요구가 성균관으로부터 승인되어

2014-257徐正淇 成均館長으로부터 孔紀 2565(2014)1010

孝倫理敦篤히 실천하므로 모범이 되었다고 孝子賞授與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