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곡비(勿哭碑) (1)
필자는 개인적으로 임제(林悌) 선생을 특별히 존경한다. 천재적 시재(詩才)도 존경하지만
그 높은 기상과 호방한 풍류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선생의 호가 ‘백호’이기
때문에 흔히 ‘임백호(林白湖)’ 선생이라고 부른다. 전남 나주에는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3년에 세운 백호문학관이 있다. 문학관 근처 영모정 아래에는 ‘물곡비’라는 비석이 있다.
물곡비는 ‘勿哭碑’라고 쓴다.
‘碑’는 당연히 비석이라는 뜻이다.
‘勿’은 ‘말 물’이라고 훈독하는 글자인데 ‘하지 말라’는 뜻이다.
‘哭’은 ‘울 곡’이라고 훈독한다.
‘勿哭碑’는 글자대로 풀자면 ‘울지 말라고 한 비석’이라는 뜻인데, 이는 임백호 선생의 유언을
새긴 비이다.
비의 내용은 이렇다. “중국의 주변에 있는 네 오랑캐와 여덟 미개 민족도 다 황제를 칭했는데
유독 조선만 스스로 중국 속으로 들어가 중국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으니 내가 살아본들 무엇을
할 수 있겠으며 내가 죽은들 또 무슨 일이 있겠느냐? 울지 마라."
[四夷八蠻 皆呼稱帝, 唯獨朝鮮, 入主中國, 我生何爲, 我死何爲? 勿哭!]
중국이 오랑캐라고 부르며 야만시했던 주변의 이민족인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등은 다 황제를
칭한 적이 있다. 선비족이 세운 북위(北魏)제국이 그렇고, 당항족(黨項族)이 세운 서하(西夏)제국,
거란족의 요나라, 몽골족의 원나라, 여진족의 금나라와 청나라가 다 황제를 자칭했다. 이처럼 중국 주변의 이민족들도 다 한 번쯤은 스스로 일어나서 황제를 칭하는 제국을 세웠는데 그런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이 중국을 주인으로 섬기기만 해온 우리 역사의 사대성(事大性)을 임백호
선생은 통렬하게 한탄한 것이다.
가슴이 먹먹하게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통쾌한 글이다. 당시 사대주의에 절어 있던 조선의
조정과 선비들을 향해 임백호 선생 말고 이런 통탄을 한 인물은 아무도 없다. 21세기, 오늘을 사는
우리도 뜨겁게 느껴야 할 통탄이다.
물곡비(勿哭碑) (2)
임백호 선생이 통탄한 대로 우리나라만 한 번도 스스로 황제를 칭하지 못하고 중국을 주인으로
섬겼는데 이러한 답답한 사대주의는 우리의 근현대사에서도 지속된다. 청일전쟁 승리의 전리품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청나라의 모든 간섭을 차단한 일본은 우리에게 청나라와 동등한 지위를 가지라며 ‘대한제국’을 선포할 것을 종용했다.
이렇게 탄생한 대한제국은 일본의 꼭두각시로 겨우 연명하다가 결국 1910년에 일본에 나라를
내주고 말았다. 일본에 나라를 내주는 데에 앞장선 친일파들은 일본에 대해 개처럼 철저히 사대했다.
1945년, 광복된 이 땅에 미군이 들어오자 이번엔 미국에서 공부한 일부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미국에 대해 철저히 사대함으로써 남한만의 정부수립 주역으로 성장하였다. 조국의 분단으로 인해 생겨난 반공이라는 새로운 이념 아래 6·25전쟁을 치르면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극대화되었으며, 한 번 극대화된 미국의 영향력은 지금도 남북한 모두에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자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또한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다. 중국의 입맛에 맞는 논문을 쓰며 중국보다 더 앞장서서 한국 문화를 중국 문화의 아류로 취급하려 드는 연구 아닌 연구를 하는 사람도 눈에 띄고, 동북공정이라는 중국의 공개된 음모 앞에서 한마디 말도 못하고 오히려 중국의 비위를 건드릴까 봐 우려하는 정부의 자세도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중국에 살고 있는 재중동포를 중국 정부는 중국 영내의 소수민족으로 여겨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조선족이면 같은 조선족 혈통인 남북한 모두 다 중국의 소수민족 국가가 되어 버릴 수 있는데도 아무 생각 없이 우리도 덩달아 조선족이라고 부른 결과, ‘조선족’이 아니라 ‘재중동포’인 그들을 이제는 ‘재중동포’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되었다. 한심한 일이다. 임백호 선생 물곡비의 의미를 심각하게 다시 새겨야 할 때이다.
물곡비(勿哭碑) (3)
가장 이른 시기의 한자로서 중국 최초의 문자로 여기는 갑골문(甲骨文)이 발견된 중국의 하남선
안양현 옛 은(殷)나라 유허지에는 2009년에 중국 정부가 세운 중국문자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1층 전시실에는 중국 한자가 변천해온 과정을 중심으로 유물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중국에 속한 ‘소수민족’들의 문자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2층 전시실에는 훈민정음도 전시되어 있고 ‘우리나라(我國=中國)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문자’라는 내용의 설명이 붙어 있다. 소름 끼치는 일이다.
서울 인사동에 가면 문방사우, 즉 붓, 먹, 종이, 벼루 등을 파는 가게들이 있는데, 이들 가게에서는
서예연습용 체본으로 중국에서 수입해온 광개토대왕비 탁본집도 팔고 있다. 그런데 이 광개토대왕비 탁본집의 표지에는 ‘진호태왕비(晉好太王碑)’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好太王은 광개토대왕의 다른 약칭이다.
광개토대왕의 정식 시호(諡號:사후에 생전의 공덕을 기려 추증한 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나라의 언덕에 묻히신 국토의 경계를 널리 넓히시고 나라를 평안하게
하신 좋고 위대한 왕)’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국토를 넓힌 공적에 주안점을 두어 ‘광개토대왕’이라고 약칭하지만 중국에서는 ‘광개토(廣開土)’ 즉 ‘국토의 경계를 넓혔다’는 의미를 담은 약칭을 사용하면 광개토대왕이 중국 땅을 많이 정복했음을 인정하는 꼴이 되므로 절대 광개토대왕이라고 칭하지
않고 ‘好太王’이라고 칭한다.
그런 好太王, 즉 광개토대왕 비의 탁본집 책이름을 ‘晉好太王碑’라고 명기함으로써 공공연하게
호태왕, 즉 광개토대왕을 고구려 왕이 아닌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晉’나라 왕으로 공표(公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책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다. 한심한 일이다.
하나를 지키지 못하면 장차 열 개, 백 개를 빼앗긴다. 임백호 선생 물곡비의 의미를 다시 새겨야 할 이유이다.
김병기 서예가, 전북대 중문과 교수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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