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객령공계 대종회/갈곡공파

전객령공계 갈곡공파 5세조 갈곡공(葛谷公) 事蹟과 제단

임홍규 2009. 8. 8. 22:05

           

            경기도 화성시 봉담면 덕리 서봉산 29-1 소재

 

  전객령공계 갈곡공파 5세조 수겸(守謙) 자(字)익지(益之)호(號)갈곡(葛谷) 우(又)신옹수 영어

(愼翁受 榮於)직제학 김공문(直堤學 金公汶) 계묘(癸卯) 문과 홍문관(文科 弘文館부제학(副堤學) 겸(謙) 동지(同知) 성균관 사세조(成均館 事世祖)역임

 

                           

林守謙 事蹟(임수겸 사적)

公의 字는 益之(익지)이고 號는 葛谷․愼翁(갈곡.신옹)이며 葛谷公派祖(갈곡공파조)로서 平澤貫 典客令公系 一世 世春(평택관.전객령공계일세조.세춘)의 孫(손)으로 1409年(太宗 9)에 贈都承旨 允生의 獨子(증도승지.윤생의 독자)로 出生(출생)하였다.

15歲에 南學(서울 남부에 있는 四學의 하나)에 입학하여 修學하고 그 학문탐구가 비범하여 司馬所가 선발한 龍仁儒學(용인유학)의 敎導(교도)가 되어 後學敎育(후학교육)과 학문진흥에 전념하다가 주위의 권유로1447年(世宗 29)에 親試文科(친시문과)에 丁科(정과)로 39歲의 늦은 나이에 及第한 후 端宗 (단종)3年 正言을 비롯하여 司成, 全羅道觀察使, 戶․禮曹叅議, 大司成, 大司諫, 副提學,(전라도관찰사.호.례조참의.대사성.대사연.부제학) 1471年(成宗 2) 兼守同知成均館事(겸수동지성균관사)를 歷任하였으며 일시 官職을 辭任하고 鄕里인 新昌(충남 아산시 고도)에서 蓮亭(연정)을 세우고 鄕學에 힘쓰다가 成宗 임금에게 재등용되었고 다시 퇴직후에도 鄕學養成(향학양성)에 정진하다가 1492年(成宗 23)에 壽 84歲로 운명하였다.

墓는 경기도 화성시 봉담면 덕리 서봉산 29-1에 소재한다. 膝下에는 樞․桓․根․檡․格․楫(추.환.근.석.격.즙)의 六男을 두었으며 이들이 각각 忠南, 京畿道의 6개지역에 世居定着(세거정착)함으로서 이른바, 6坊派라고 칭하며 後孫들이 公의 높은 學問과 名聲(명성)을 받들고 기리고저 派祖로 모시고 그간 獨自的(독자적)으로 宗․譜事(종.보사)를 처리하고 있으나 上系의 定立과 관련한 제반을 정리한 후에는 典客令公系와의 합치를 추진할 것이다.

公은 學問이 매우 深奧(심오)하고 학문발흥에 큰 功이 있음을 평가받아 世祖 임금은 便殿(편전)이나 經筵場(경연장)에 불러서 임금과 신하들 앞에서 經學과 史學 및 性理學을 講論(강론)케 하였으며 世子로 하여금 어려운 것을 질문하게 하기도 하고 儒生(유생)과 醫學․易學(의학.역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講論(강론)을 하게하였다.또한 公이 官職(관직)을 辭任(사임) 하고 鄕里(향리)의 蓮亭(연정)에서 후 학양성에 매진중에 成宗 임금의 ?그대는 經學에 밝고 行實(행실)이 착하여 師表(사표)가 되기에 합당한데 일찍 퇴관한 것은 옳지 않다?는 소명을 받고 입궐하여 경보당에서 강론하였는데 임금의 백성들에게 폐단이 되는 것 등을 묻는 등 公의 學問(학문)을 인정하여 3品階(삼품계)가 높은 同知成均館事(동지성균관사)를 임명하였다. 이에따라 일부 大臣(대신)과 儒生(유생)들이 전에없는특별대우라고 부당함을 고하였으나 成宗(성종)임금은.이를 듣지 않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