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澤林氏 典客令公系 世春 先生
(전객령공계 약사)
관향(貫鄕) : 평택임씨(平澤林氏) 성명(姓名) 임세춘(林世春)
아호(雅號) :
연대(年代) : 려말(麗末)
직위(職位) : 세자사(世子師). 전객령(典客令)
공신호(功臣號)
저작(著作)
향사(香祀) : 숭모사(崇慕祠)
문헌(文獻) : 『高麗史』 卷104. 李丙燾.「韓國史』『中世篇』1961.
(관련 문헌의 보완을 요구합니다.)
약사(略史) : 平澤林氏 典客令公系는 麗末 德望과 學識이 뛰어나 世子宮의 世子師
(太子賓客)를 歷任하고 典客令으로 國寶의 迎接과 大臣들의 供饋등을 管掌하는 등
愛國忠貞과 淸廉의 本이 되어 니라와 家門을 빛낸 林世春을 一世祖로 하여 累代에
걸쳐 世居한 平澤을 本貫으로 삼아 世系를 이어왔다.
世春의 長子 榟는 禮儀判書와 寶文閣 大提學을 지냈고 曾孫 整은 朝鮮 初期 禮曹判書,
兵馬節度使. 平壤府尹에 올라 成宗때 淸白吏에 錄選되었으며. 玄孫 命山은 吏曹判書를
歷任하였다.
또한 朝鮮의 名將 林慶業은 世春의 12世孫으로 領中樞府事 篁의 四男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武藝에 뛰어나 武科에 及第 小農堡權管. 僉知中樞府事를 지냈고 李适의
亂 때에 功을 세워 振武原從一等功臣이 되었으며 후에 兵馬節度使 兼 安州牧使를 지냈다.
丙子胡亂 때는 到處에서 敵軍을 擊退하여 英雄的이고 傳說的인 勇名을 떨쳤으며
그의 兄 亨業도 丙子胡亂 때 母親喪을 당한 關係로 避難을 못가 淸軍에게 붙잡혔으나
孝誠이 뛰어남을 안 淸軍도 孝人不可害라고 讚嘆할 정도로 孝子. 忠臣의 旌門이 고향에
세워졌으며 肅宗 때 持平에 追贈되어 名望 높은 平澤林氏 家門을 더욱 빛냈다.
平澤林氏 典客令公系는 祖上이 살아온 歷史的인 背景과 行蹟을 收錄하여 子孫萬代에
傳하고자 大宗會 編制를 參判公. 判書公. 承旨公. 兵使公. 正郎公. 典籍公. 葛谷公 등
7個派로 하여 1802年 壬戌譜를 始刊으로 1924年 甲子譜. 1957年 丁酉譜. 1983年
癸亥譜. 2004年 甲申譜를 發刊하였으며 崇祖 思想의 鼓吹(고취)와 爲先事業으로
宗中 中興과 繁榮의 기틀을 造成하기 위해 1947年 忠州市 丹月洞 382-15에 崇慕閣를
建立하고 每年 4月1日 1.2.3世祖의 祭享奉行을 遂行해 오다가 老朽하여 2007年 重創하고 名稱을 崇慕祠로 變更하면서 9月5日 뜻 깊은 竣工式을 擧行하였다. 近處에 林慶業 將軍을
모시는 忠烈書院이 隣接해 있어 宗門의 繁盛이 자랑스럽다. 1984年에는 忠州市 鳳方洞에
平澤林氏 典客令公系 大宗會館을 建立하고 宗會를 運營하여 오다가 狹小하여 2005年
4月11日 忠州市 蓮守洞 1148番地 現 建物로 移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약사의 보완을 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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