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객령공계 대종회/대 종 회

전객령 휘 임세춘

임홍규 2009. 4. 16. 07:27

 

 

전객령 임세춘(典客令 林世春)


            (충열왕 연간 ~ 충선왕 연간, ?~?)

              평택임씨(平澤林氏)의 중시조이다. 제25대 충렬왕(忠烈王)때문과에

              급제하였고 세자빈객을 거쳐 전객령(典客令)겸 연희궁(衍喜宮)부사(副使)

                 판결사를 역임하였다,  전객령은 국빈의 영접과 대신들의 공궤(供饋: 음식물제공)를

              담당하는 관청인 전객시(典客寺)고위 관원이다. 테조4년(921)에 태봉(泰封)의

              제도를 본뜬 예빈성(禮賓省)의 후신이다.이 관청은 명칭이 여러번 바뀌었는데

              성종 (成宗)14년(995)에 객성(客省)으로 고쳐졌으며 뒤에 다시 예빈성(禮賓省)

              으로 환원됐다. 전객시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충렬왕24년(1298)에

              충선왕(忠宣王)이 선위를 받아 즉위하여 관제를 개혁할 때이다. 충선왕은

              예빈성을 전객시(典客寺)로 명칭을 고치고 수장인 판사(判事)직을 혁파하는

              대신 경(卿)을 2인으로 증원하였다. 하지만 충렬왕이 곧 다시 복위하여 예빈

              시(禮賓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1308년에 다시 왕위에 오른 충선왕은 전객시

              로하고 영사(領事)2인을 두어 겸관(兼官)으로 삼고 경(卿)을 영(令)으로 고쳐

              정3품을 임명하도록 했다. 이같은 관제 개혁의 역사를 살펴볼때 임세춘이

              전객령을 맡았던 시기는 충선왕 복위기간(1308~1313)으로 추정된다.

              이후에도 이 관청의 명칭은 전객시와 예빈시를 넘나들다 공양왕(恭讓王)2년

              (1390)예빈시가 되어 조선조로 이어졌다.

              배위는 공감시랑 경수의 딸인 청주경씨(淸州慶氏)이다. 아들 둘을 두었는데

              첫째아들인 재()는 충정왕(忠定王)때 예의판서(禮儀判書)와 보문각 대제학

              (寶文閣大提學)을 지냈다. 증손인 정(整)은 조선조에서 예조판서 병마절도사

              평양부윤에 올랐으며 성종(成宗)때 청백리에 녹선 되었다. 조선인조(仁祖)때

              의 명장 임경업(林慶業)은 임세춘의 12세손이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 쌍용동

              (雙龍洞 - 현재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항동동)에 계좌(癸坐)로 모셨으나

              실전(失傳)하여 충주시 단월동 숭모사(崇慕祠)에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양력

              4월 1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2007년 10월에 경기도 파주시 소재 고려통일대전에 배향 되었다.

         * 평택임씨의 원래 시조는 당나라 한림학사로 신라시대 우리나라에 와 정착한 임팔급(林八及)이다.

                  그러나 그후손들의 세계가 전해지지 않아 임세춘을 1세조로 하는 전객령계와 역시 고려 말 삼중대광

                  (三重大匡)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이 된 임언수(林彦修)를 1세조로 한 충정공계(忠貞公系)로 나뉘어

                  오늘에 이른다.


                     참고문헌 : (춫추읍지), (평택임씨세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