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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七夕)【二十四節와俗節】

임홍규 2019. 8. 6. 06:16




* 금년에는 양력 8월1일이 음력도 7일1일이라 

   양력 8월 7일이 칠석(七夕) 음력7월7일 입니다,


                     칠석(七夕) 【二十四節와俗節

 

七夕은 음력 77일을 칠석(七夕)이라 한다,

칠석(七夕)은 절기(節氣)가 아니고 속절(俗節)이다,

七夕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우리나라 歲時名節이다,

七夕3월 삼짇날, 5월 단오, 99일 중양절(重陽節)과 함께 양()이 겹 치는 길일(吉日)

    인식되어 여러가지 제례와 세시행사(歲時行事)가 있었다,

 

해 뜨고 달 뜨는 시간

해 뜨는 시간은 오전552분이고, 해 지는 시간은 오후719분이다,

달 뜨는 시간은 오후026분이며, 달 지는 시간은 오전1123분이다,

七夕俗節이므로 절입시간이 없다,

 

1, 칠석(七夕)의 어원(語源)

칠석의 어원은 칠()77일의 날짜를 이르는 말이고, ()은 저녁을 뜻하는데 합하여

    칠석날(七夕日)이라고 한다, 이를 줄여서 말할때는 칠석(七夕)이라고 한다,

 

2, 칠석(七夕)의 유래(由來)와 전설(傳說)

칠석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의재해기(齊諧記에 처음 나오는데 주()나라에서

    한대(漢代)에 걸쳐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설화에서 민속 으로 정착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삼국시대인 고구려 벽화(평남 남포동 덕흥리 고분)에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그림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이로 미루어 본다면 이미 삼국시대에 민속

    (民俗) 으로서 정착되지 않았나 생각된 다.

그러나 옛 문헌 기록은 고려사(공민왕 때)부터 보인다, 고려 공민왕이 몽 고의 왕후와

    더불어 칠석날 궁궐에서 견우와 직녀성에 제사하고 백관들에 게 녹을 주었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절일제(節日 製)의 과거를

    실시한   기록이 있고, 궁중 밖의 민간인에게도 칠석의 풍속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기록이

   東國歲時記등 여러 문헌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옥황상제(玉皇上帝)의 전설(傳說)

     옛날 옛적에 옥황상제(玉皇上帝=道家에서 말하는 하느님)가 다스리는 하 늘 나라 궁전의

   은하수 (銀河水) 건너편에 부지런한 목동(牧童)인 견우(牽 牛)가 살고 있었다,

   옥황상제(玉皇上帝)는 견우(牽牛)가 부지런하고 착하여 손녀(孫女)인 직녀 (織女)와 결혼을

   시켰다,  그런데 결혼한 견우와 직녀는 너무 사이가 좋아 견우는 농사일을 게을리하고 자녀는

   베짜는 일을 게을리 했다, 그러자 천계(天界)의 현상(現象)이 혼란에 빠져 사람들은 천재(天災) 

   와  기근(饑饉) 으로 고통을 받게 되었다,

     이것을 본 옥황상제가 크게 노하여 두 사람을 은하수(銀河水)의 양쪽에 각 각 떨어져 살게

   하였다,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애만 태 울 수밖에 없었다, 부부(夫婦)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까마귀와 까치들 은 해마다 칠석날에 이들이 만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 아주니, 이것이 오작교(烏鵲橋)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