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리더십과 제언(提言)
세종대왕은 우리역사상 다방면에 걸쳐 탁월한 업적을 남기셨는데 이런 업적들을 이루어 가신
대왕의 리더십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1. 세종대왕의 리더십
세종대왕의 리더십은 다음과 같이 크게 나누어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첫째, 지적(知的) 리더십이다. 대왕은 스스로 엄청난 분량의 독서와 공부를 하고, 집현전을 통해
통합적 지식을 축적해내어 활용한다. 그리고 경연(經筵)이라는 독특한 공동학습프로그램과 정례
회의를 통해 지식을 확장하고 소통한다. 축적되지 않고 소통되지 않는 지식, 확장되지 않는 지식은 단편으로 끝나고 자신만의 만족에 그쳐버리게 될 것인데 대왕은 이것을 현명하게 극복하고 나라와 백성들을 위하는 길로 이끌어 냈다. 이러한 지적 리더십은 대왕의 능력의 바탕이 되었다.
둘째, 백성들에 기초한 소명(召命)의 리더십이다. 지금 ‘왕이 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임무는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였다. 그리고 세종대왕은 선언하였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이것은 백성을 위한다는 爲民과는 다른 백성이 근본이라는 民本으로의 “중심이동” 선언이다. 그 선언에 따라 대왕 자신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백성을 근본으로 하여 다스리는 위임을 받은 자”라는 소명의식이 대왕의 비전(Vision)을 실현하는데 근간을 이루고 있다.
셋째, 창의적(創意的) 리더십이다. 대표적인 것이 훈민정음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발명품, 실용적
기구들, 실용서적으로는 의방유취, 농사직설, 삼강행실도 같은 실용 매뉴얼들이 있는데 이러한 결과물들은 모두 창의경영의 성과들이다. 그런데 이 창의경영의 출발은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어진 마음’에서 출발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절박한 필요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책임진 백성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어질지 못하거나 감수성이 없는 마음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의경영은 대왕의 널리 열린 마음의 자세에도 연유한다고 하겠다. 스스로 탁월한 유학자이지만 그 세계에만 갇히지 아니하고 두루 세계의 모든 문물과 사상 등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배움을 얻었다.
넷째, 소통(疏通)의 리더십이다. 대왕은 그 스스로 수준 높은 학문을 갖추었고 왕이 되기 전에 부왕인 태종대왕으로부터 ‘일의 대체를 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안들에 대해 의견을 구하고 신하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을 채택해서 힘을 실어주었다. 지적 권위를 가진 사람이 빠지기 쉬운 오만과 독선이 없었다. 소통의 적이 자신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는 데서 오는 것이라면 대왕의 소통은 다른 이 들의 지혜가 더 훌륭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특별히 대왕의 경청능력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경청은 소통의 출발이
된다는 것을 대왕께서 몸소 보여주었다. 조선시대 신하와의 독대는 거의 전부가 대왕이 하신 것이다 (예외~ 효종대왕이 우암 송시열 선생을 독대한 것과, 숙종대왕이 소재 이이명선생을 독대한 것).
다섯째, 추진력을 갖춘 실천적인 리더십이다. 보통 추진력이란 언어가 주는 이미지는 각종 장애물과 소소한 민폐는 돌아보지 않고 돌파해 내는 저돌성을 나타내 보이지만 대왕은 느리더라도 끝내 해내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일관된 추진력을 보여주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신하들의 반대를 극복해내는 설득과 타협, 소통을 통해 결국 신하들이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참여하게 만드는 포용적인 실천력을 갖춘 것이다. 세종대왕 시대에 이루어진 성과들이 어느 하나 단기간에 쉬이 해치울 수 없는 것들이었는데도 그 많은 것들을 이룬 배경에는 이러한 설득력과 실천력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여섯째, 실용(實用)의 리더십이다. 대왕은 어떤 사안을 시작하거나 그 결과를 보고받을 때면 ‘이것이 백성에게 과연 유용한가?’를 먼저 물었다. ‘지킬 수 없는 법은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하며 실용적 법제정과 실행에 초점을 맞추었다. 실용은 인재쓰기에서도 드러난다. 뇌물을 받거나 도덕적인 지탄을 받는 사람들도 그의 재능을 아끼며 활용하고자 임금이 방패막이가 되어 용서하고 등용하기도 한다. ‘법과 융통성의 원리 중에서 어떤 한가지만을 고집할 수 없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지나친 원칙론이 가져올 수 있는 폐단을 실용의 차원에서 보완하였다. 인간이 만든 제도와 원칙들은 모두
영원불변하지는 아니한 것인데, 대왕은 이를 알고 때에 따라 적합한 융통성을 발휘하였다.
일곱째, 수신(修身)과 인격도야(人格陶冶)의 리더십이다. 세종대왕만큼 자기절제와 인내가 몸에 밴 사람이 있을까 싶을 만큼 자신을 다스림에 뛰어났다. 대왕은 ‘내가 경서와 사기는 보지 않은 것이 없고 또 지금은 늙어서 능히 기억하지 못하나 지금에도 오히려 글 읽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 것은 다만 글을 보는 동안에 생각이 일깨워져서 여러 가지로 政事에 시행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로써 본다면 글 읽는 것이 어찌 유익하지 않으랴’ 라고 하였다. 평생학습, 나아가 평생인격도야를 스스로 실천하였다. 실용을 위한 학습보다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은 바로 인격도야,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인 것이다. 리더십의 유형들 중 가장 강력하고 오래가는 리더십은 인격의 리더십이다. 대왕은 ‘인격수련, 마음공부가 우선되어야 한다.’라고 하며 당시 젊은 사대부들에게 ‘어떻게 하면 선비들의 부화(浮華)한 버릇을 버리게 할까’를 묻기도 하였다.
여덟째, 세종대왕은 발전적 전망을 공유하는 '관계'의 리더십, ‘참여’의 리더십을 펼쳤다. 어느 시대나, 어느 위치에서든 세상 경영은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일정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도록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진정한 리더십은 상하간의 관계로만 접근하지 않는다. 일방적인 명령과 복종으로는 魂이 묻어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대왕의 리더십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관계 속에서 일을 진척 시켰다는 것이다. 잠든 신숙주에게 임금의 옷을 덮어주었다는 일화는 바로 그 특유의 밀도 높은 관계를 스킨십(skinship)으로 전화해
놓은 예에 해당한다. 나아가 한 나라의 국왕을 친근감의 대상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세종대왕 리더십의 특징 중 하나는 직접적인 참여에서 찾을 수 있다. 훈민정음의 창제, 도성 축조,
천문 관측기구 제작, 각종 의학서 편찬, 4군 6진 개척, 신병기 개발, 용비어천가 및 보태평 제정 등등의 모든 일이 대왕의 참여적 리더십을 기초로 이루어졌다.
세종대왕은 국가적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했음은 물론, 한편으로 신하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는 현대 경영에서 얘기하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로 강하게 국가 경영의 드라이브를 걸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부지런한 개인적 성향 때문에 상명하달식으로 진행된 과제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아홉 째, 장기적 안목의 리더십이었다. 훈민정음이 대표적이다 훈민정음은 당대를 넘어 천년 뒤의
후손들의 삶의 개선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대왕은 그의 정책이 오랜 시간에 걸쳐 미칠 영향력을 고려해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결과에 초점을 둔 정책들을 펼쳤다. 민주적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국민투표를 실시해 조세제도를 개선한 것 등이 그 예이다. 또한 대왕이 유학과 불교 등에 기반을 둔 정신, 문화적 인프라 영역까지로 자신의 역할을 넓혀 나간 것은 그의 리더십과 정신이 단순히 당대에 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 것임을 예표하고 있다. 다양한 방면의 저술과 음악의 발전적 집대성이 그 예라고 하겠다.
열 째, 섬김과 사랑의 리더십이었다. 왕조시대인 그 당시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백성들을 섬김의
경영을 보여주었다. 대왕의 탁월한 경영의 모티브는 백성을 향한 엄청난 사랑이었다.
대왕의 리더십은 인격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상대를 감화시키고 설득해 마침내 녹여내는 그런 리더십이었다. 제왕의 권위로 강제되고, 억지로 숭상되는 그런 종류의 리더십과는 거리가 먼, 매우 민주적 방식에 의한 리더십이었던 셈이다. 그리하여 신하들은 그의 인격의 영향권 내에 자발적으로 소속되기를 원하였다. 어느 신하도 세종 앞에 와서 스스로 마음이 무너져 내리지 않는 신하가 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신하들과 더불어 마음을 공유하는데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다시 말해서, 임금이 권위가 아닌 애정 속에 스며든 것을 의미한다.
2. 제언 (提言)
위에서 개략적으로나마 세종대왕의 리더십과 그의 배경이 될 만한 사상적 정신적 연원(淵源)들을 분류하여 생각해 보았다. 대왕의 리더십은 오늘날 발전되고 체계화된 이론들을 거의 대부분 포용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나아가 현대 이론에서는 접할 수 없는 우리 고유의 문화에서 우러나오는 뛰어난 면모들도 있어 더욱 감탄하게 된다.
다만 대왕이 사시던 시대적 배경의 한계에서 연유하여, 부족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안식(Rest)의
리더십’을 추가 보완하고 싶다.
‘안식(安息, Rest)의 리더십’이란 리더십의 발휘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힘든 일인 만큼 재충전하는 휴식을 가지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늘 휴식이 없이 일하는 것은 인간의 태생적 한계로 인하여 결국 큰 장애와 역기능을 불러오는 요인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를 철저히 실천하여 바쁜 가운데에서도 시간을 내어 늘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며 안식하였으며(마가복음 6장31절), 삶 자체를 즐기며 나아갔다(마태복음 11장19절). 삶을 즐기는 예수를 그를 의도적으로 비난하던 바리새인들은 대식가(glutton), 포도주애호가(wine bibber), 파티狂(party animal)이라고 까지 비하하여 비난하기도 하였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십계명중 4번째가 일주일에 하루를 철저히 안식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한번 씩은 각자 취향대로 즐거운 휴식의 시간을 갖자. 일주일에 하루씩은 일을 떠나 안식하며 지내자. 일 년에 한번 씩은 모두 잊고 지내는 휴가의 기회를 갖자. 이는 단지 쉬는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며 나아가 재도약의 발판이 되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사시던 시대에 유학이나 불교 등에서는 이러한 안식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강조되지 아니하여, 세종대왕은 안식의 시간은 별로 갖지 못하셨던 것 같다. 만일 대왕이 이렇게 안식의 시간을 가졌더라면 더 오랫동안 재위하시며 후손들을 위하여 더 많은 업적을 쌓았으리라!
나는 여기까지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살펴보면서 누누이 드러난 그 배경, 원동력으로서의 세종대왕의 인격과 정신을 주목한다. 이러한 대왕의 인격과 정신을 다만 그의 리더십의 배경으로 보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후손들이 지녀 나가야할 기본적인 국민정신, 인격도야방향으로 구체화하여 승화시켜가는 것이 대단히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대왕의 인격과 정신은 外來의 것이 아닌 우리조상의 것으로 오늘날 전 세계에 비추어보아도 손색이 없는 국민정신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에 부합되는 세계적으로 검증이 된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 등의 핵심사상 등을
대왕의 정신에 접목하여 유연하게 서로 상승작용 하여 나가게 한다면, 이는 우리나라가 앞으로의
세계를 리드해갈 탁월한 국민정신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세계의 인민을 위해 크게 기여하고 보람 있게 살아갈 귀한 터전이 될 것이다.
우암 송시열 선생은 聖人의 道를 깨달아 이를 후세에게 전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즉 성인의 도를 배우는 것을 인격도야의 핵심이요, 나아가 리더십의 근간으로 본 것이다.
그는 친구에게 편지해 "내가 스스로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 이를 배척하는 말을 하였다가 지금 사람들에게 노여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러나 중국 한유(韓愈)의 말에 '성인의 道가 나로 말미암아 조금이라도 전해질 수 있다면 비록 만 번 죽더라도 여한이 없다'고 하였는데, 나도 참람스럽게 늘 이 말을 외고 있네. 자네도 이 말을 들으면 반드시 냉소할 것이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네"라고 전했다.~충북대 우암연구소 김성기 소장 백강 이경여 선생은 성학(聖學)을 연마하여 인격을 닦음으로써 만화(萬化)의 주재자가 되는 큰 리더십을 가질 것을 권면하였다.
성학(聖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덕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欲)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 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1653년 효종4년 7월 2일 상차문 중)
예수 그리스도의 道의 핵심은 “하나님(진리)을 全心으로 사모 공경하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로 축약된다. 이것이 인간이 걸어야할 바른 삶의 길이면서, 곧바로 또한 바람직한 리더십의 핵심 원동력, 요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국민정신이 취약하고 흔들리며 온갖 사회악과 범죄들이 일고 비전(vision)도 불투명하고 또한 천박스러운 면이 있는데, 이를 개선할 바람직한 힘, 리더십은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탁월한 정신, 훌륭한 인격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나는 이에 세종대왕의 탁월한 정신과 훌륭한 인격을 우리 후손들의 국민적 정신의 기반, 인격도야의 기반으로 삼아 널리 모든 국민이 배우고 익혀 나갈 것을 힘써 권장한다.
2013. 7. 22.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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